본2 중간고사가 끝난지 일주일이 안된 지금. 어린이날인 오늘, 내일까지 하루 더 쉬기에 오랜만에 집에 내려와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여유롭게 나만의 시간을 가질 때는 항상 생각이 많아진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마음의 정리를 하기도 하고 행복한 일이 있으면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기도 한다.
본과 2학년을 시작한 3월, 약리학 실습 시간에 교수님이 일종의 진로 특강 형식으로 수의사가 갈 수 있는 길을 일일이 설명해주시면서 자신의 선배, 동기, 후배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또한 그 일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몇 주에 걸쳐서 설명해주신 적이 있다. (나중에 블로그에 수의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나도 수의대에 들어오기 전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더 일찍 쓸 수 있었지만 웬만하면 졸업 후 쓰려고 하는데, 내가 직접 경험하고 들은 것이 아직은 그렇게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수의대에 오고 싶은 수험생들, 수의사가 될 수의대생들이 내 글만 보고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있어 최대한 그 시기를 미루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강의가 몇 주동안 진행된 다음, 과제로 본인이 졸업 후 어떤 수의사가 되고 싶은지 등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워드로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과제를 제출한지는 한 달이 넘어갔지만, 수의대 6년 중 절반을 넘긴 지금, 슬슬 나의 목표를 정할 때도 되었고 '어떤 말을 만 번 이상 하면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처럼 이것들을 계속 마음에 담아두면서 학교를 다니다보면 내 꿈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교수님들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학부생 때는 자기의 진로를 하나로 한정짓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은 처음부터 소동물 임상을 꿈꿔왔고, 동아리도 그 쪽으로, 실험실도 그와 관련된 실험실로, 실습도 로컬 동물병원 1차, 2차, 그리고 대학병원까지 그렇게 했음에도 졸업하고 다른 길로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분야의 실습을 하라고 하시고 나도 그렇게 하려고 하고 있다.
그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나는 지금 무엇에 끌리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크게 3가지로 나눴다. 이 중에 하나를 할 수도, 아니면 이 3가지가 아닌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 그래도 지금은 이 3가지를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해보고자 한다.
1. 흉부외과 전문의 (소동물/대동물 임상)
내 글들을 쭉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의사다. 조부모님, 부모님, 그리고 올해 대학에 들어간 내 동생까지. 그 중에서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흉부외과 교수시다. 이 때문에 나도 어릴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아니 삼수할 때까지 목표가 의대에 들어가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3대 째 흉부외과 전문의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삼수까지 했음에도 내 성적은 의대에 갈 성적이 되지 않았고 같은 생명을 살리는 수의대에 왔고 지금은 또 나만의 꿈을 찾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소동물, 대동물에서 흉부외과 전문의, 그것도 심장 쪽을 전문으로 하는 수의사였다. 작년 겨울, 우리학교 외과 교수님과 나의 진로에 대해 두시간 정도 상담했던 적이 있었다. 이것에 대해 교수님께 말씀드리니 아직 인의에 비해 수의학에서는 연구가 덜 된 분야가 세 가지가 있는데, 심장, 종양, 그리고 신경 쪽이라고 하셨다. 갈수록 노령견들이 많아지고 있고 노령견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 이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분야를 남들보다 먼저 공부한다면 충분히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수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저 세개 중에서도 당연히 나에게 가장 끌리는 건 심장이었다. 사람은 아니지만, 동물에서라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잇고 싶었다. 그러나, 심장 수술의 경우 수백만원을 넘는 진료비로 인해 과연 이를 감당할 만한 수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일반적인 로컬에서는 할 수 없고, 이름만 말해도 알만한 대형 동물병원이나 학교 동물병원에서나 할 법한 수술이다. 약리학 교수님이 자신은 '한 분야의 Specialist보다 여러가지를 잘 할 수 있는 Generalist를 더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만약 자신이 나중에 소동물 임상 쪽을 하고 싶다면, 페이닥터로 일하거나 원장으로써는, 특히 개원해서 원장을 할거면 저 말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1인 동물병원을 개원하면 자기가 전공한 과목뿐만내가 말한 것은 교수가 되고 연구를 하기 딱 좋은 주제인 것 같다. 그래도 만약 소동물 임상을 한다면, 이 길을 향해 걸어가지 않을까 싶다.
2. 대한민국 승마 국가대표팀 전담 수의사 (대동물 임상 - 말)
누군가가 나에게 취미를 물어본다면, 나는 가장 먼저 '스포츠 경기 챙겨보기'를 말한다. 스포츠는 어떤 종목이든 공정한 규칙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며 자신의 노력과 운으로 그 보상을 받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공으로 하는 스포츠는 맨몸운동과는 다르게 조금만 연습해도 어느정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편이다. 한창 나의 꿈 때문에 방황하던 고3 때 체육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였고 실제로 합격해서 학교를 어느정도 다녔으니 내가 얼마나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알 것이다. 다만, 운동신경이 그렇게 좋지 않아 재능의 차이를 깨닫고 휴학 후 두 번의 시도 끝에 지금 학교에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는 그 한을 풀고자 예과 2학년 여름에 2주정도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에서 통역으로 봉사를 했다. 태권도는 초등학교 때 이후로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 전세계 선수들이 그 곳에 와 경기를 하는 것이 신기했고 실제로 보니 박진감 넘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포츠 대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회 운영을 위해 힘들게 노력하고 고생하는지 깨달았던 기회였다. 지금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연락하고 가끔씩 만나기도 한다. 외람된 이야기지만, 대외활동이든 봉사든 자기랑 맞는 사람을 찾으면 계속 연락하게 된다. 일부러 인맥을 늘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사람이 좋아서 연락을 계속 하게 되는 것이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대외활동과 봉사라고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대동물도 내 여러 진로 중 하나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돼지나 소 실습을 나가보려고 한다. 또 다른 대동물로는 말이 있는데, 작년 이맘쯤, 잠깐 장수에서 열린 말 지구력 대회에 알바 형식으로 선배, 동기들과 함께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몇km씩 뛰고 온 말들의 심박수를 쟀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그때부터 말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스포츠를 수의학에 접목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여러 종목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끌린 것이 승마였다. 승마는 하계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될만큼 매우 전통있는 종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두각을 보이고 있지만, 올림픽의 경우 영국이나 유럽이 강세를 보이고 있어 별다른 강세를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팀닥터가 꿈이었던만큼 만약 내가 승마대표팀 전담 수의사로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스태프로 간다면 그만큼 보람찬 일이 있을까? 항상 상상할 때마다 동기부여가 매우 되곤 한다. 그래서 외과 교수님과 상담했을 때 용인에서 말 전문 동물병원을 하신 선배님의 연락처를 받았고 올해는 조금 이르다고 생각해 내년쯤에나 연락드리고 한달정도 실습해볼 예정이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마사회는 진료보다는 행정적인 일을 생각보다 많이 해서 만약 말 임상으로 가고 싶다면 오히려 개원한 병원으로 나가보는게 낫다고 하셨다.
3. 인수공통전염병학/공중보건학 전공 후 FAO/OIE 근무 (비임상)
사실 요즘 가장 끌리는 길이 이 길이다. 인수공통전염병학과 공중보건학은 지금 본과 2학년 때 듣고 있는데, 입학 전부터 이 쪽을 생각하고 수의대에 들어왔고 실제로 과목을 배워보니 괜찮아서 이 길로 갈까도 생각중이다. 최근에는 수의사 전문 언론인 데일리벳에서 OIE 등 국제기구에서 한국인 수의사 수가 아직은 많이 적어 충분히 갈만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링크) 그래서 대강 생각한 진로로는 졸업 후 석박사 및 유학으로 교수가 되거나, 아니면 석사만 하고 검역본부에서 수의직 공무원으로 쭉 일하거나, 아니면 행정고시를 공부해서 사무관으로 농림부에서 일하는 방법도 있다. 요즘은 이 세 개의 방법 중 어떤 진로를 선택할까 고민 중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고도 남들처럼 소동물 임상으로 갈 수도 있다. 아니면, 여기서 언급하지 않았던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
이 글은 내가 수의대 6년 중 절반 넘게 다니면서 슬슬 나의 진로를 정해야 할 것 같아 여러 개의 길들 중 몇 가지를 적은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수의대생이라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번쯤 자신이 졸업하고 뭘 할지 적어도 고민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런 고민을 한번도 안하고 그냥 필드로 나갔는데 그게 자신에게 적성이 안 맞는다면 방황하다가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학부생 때는 실습이지만, 졸업해서 수의사 면허를 얻는 순간부터는 그게 일이 된다.'
따라서, 항상 내가 말했지만 학부생 때 최대한 다양한 분야의 실습을 해보자. 나는 벌써부터 하고 싶은 실습들에 비해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아 아쉬워하고 있다. 이왕 6년 다니는거 알차게 다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