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삼수를 끝내고 마침내 대학에 합격하며 쓴 수기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나에게 응원을 해주었고, 또 몇몇은 이 글을 보고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글이었다고 한다. 한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 쓰다가 지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이 글을 쓴 그 때를 생각하니 다시금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진다.
원본 : http://www.fmkorea.com/299109891
수시는 깔끔하게 6연패. 예비번호조차 못받고 역시 문과논술이란 다 쓴다고 해서 되는건아니구나 라는 걸 느끼며 비싼 돈을 주고 정시컨설팅을 받았지만 컨설팅에서 하라는대로 안하고 결국 제가 일일이 진학사와 각종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분석하며 상향1 적정1 하향1 이렇게 질렀습니다. 상향을 질렀던 가군은 이미 1월 초에 결과가 나왔었고, 별 기대는 안했지만 또 '불합격'이라는 글자를 보며 내심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고 싶어했습니다. 결국 그저께 나군 적정으로 질렀던 곳에서 합격 발표가 났었고, 발표나자마자 제 핸드폰에 "OO님 [OO대]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이 문자를 보며 저는 정말 온몸에 긴장이 다 풀린 듯 축 의자에 기대서 반쯤 누워있었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랑 말랑 했습니다. 다니던 대학교 기숙사 짐을 싸서 고모집에 가던 장면, 혼자서 한달동안 독서실 - 집을 왔다갔다하던 장면, 반수 실패하고 우울해하던 장면, 다시 삼수 시작하며 화기애애하게 친구, 동생들과 으쌰으쌰 공부를 하던 장면 등 고3때부터 작년 2015년까지 모든 수험생활이 한순간에 떠오르며 이런 것을 "주마등"이라고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1년반동안 누구보다 고생하셨던 저희 고모께 합격증을 찍어서 보내드리고, 그 순간 제 모든 친척들에게 이 소식이 퍼지며 모든 친척들이 저에게 "고생했다", "축하한다" 계속 전화나 문자를 주셨습니다. 저는 일일이 형식상이 아니라 정말 "감사드립니다" 라는 말을 몇번이고 계속 했습니다. 누구보다 제가 열심히 한걸 아신 고모도 "수고했다"며 계속 우셨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희 집은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바쁘셔서 오래전부터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께서도 우셨지만, 기뻐서 우시는게 아니고 서러워서 우셨습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죽어라 공부를 시켰는데, 결국 할머니께서 원하시던 대학을 못가 아쉬움에 우신 겁니다.
이런 상황에는 누군가 왜 그럴까, 하고 의문을 품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충분히 할머니께서 그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제 성장과정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의사가 꿈이었습니다. 뭐 뉴하트, 하얀거탑 그런것 때문이 아니고 무엇보다 제 집안의 영향이 컸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지거국 의대 2기 졸업생이시고, 흉부외과 교수를 역임하시고 심장수술만 일생동안 1000번 이상 하신 대단한 분이십니다. 또한 저희 할머니 역시 지거국 의대 4기(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졸업생이시고 산부인과 의사로써 개인병원으로 어마어마하게 돈을 쓸어담으신 분이십니다.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현재 지방 사립 의대 교수를 하고 계시며 아버지는 흉부외과, 어머니는 소아과 교수를 맡고 계십니다. 이런 의사집안에서 저는 당연히 어릴때부터, 아니 태어날때부터 꿈이 정해졌습니다. 가족 모두 제가 장손, 장남으로써 의사의 대를 잇길 원하셨으며 저 역시 할아버지-아버지-저로 이어지는 3대가 흉부외과 의사인 것을 꿈으로 삼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축구하자고 불러도 학원가야된다며 부모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듣고 중학교 때도 3년동안 중간, 기말 12번의 시험중에서 7번 연속 전교 1등, 총 8번 전교1등을 맡아 소위 엘리트의 길을 걸었었습니다. 과학고, 외고로 충분히 가고도 남는 내신이었고, 몇 개의 자사고에서도 집으로 전화와서 "우리 학교로 와달라"는 요청이 있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특목고, 자사고로 안가고 편안하게 공립고등학교로 가서 내신이나 따자는 생각에 공립고등학교를 지원했고, 결국 가고싶었던 학교에 붙어 그 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첫날, 저는 교문으로 들어가며 "이 학교 전교1등은 내꺼다." 라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착각이었습니다. 저희 고등학교는 입학고사를 3번정도 보고 반배정을 했었습니다. 중학교 내신과 입학고사 성적을 합쳐 저는 전교 10등으로 입학했습니다. 저는 중학교에서 공부하던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고등학교 공부를 했지만, 웬걸, 고등학교 공부는 차원이 틀렸습니다. 친구들도 어마어마한 실력자들이었꼬 저는 제가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내신은 갈수록 떨어져갔으며 고2가 끝나갈때쯤, 저는 그냥 평범한 중위권 학생이 되었습니다. 고3이 되고 나서 저는 엄청 방황했습니다. 생활기록부에도 장래희망을 의사로 했었는데, 성적과 꿈이 너무나도 괴리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꿈은 부모님이 강요하신 꿈이야, 단 한번도 나에게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고, 오직 너는 의사 해야한다 라는 걸 주입시켰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온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남들과는 다르게 고3이 되어서야 저의 적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었고 당시 축구를 엄청 좋아했던 저는 그 쪽으로 목표를 잡고 부랴부랴 스펙을 쌓고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찌하다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저는 나름 그 때 제일 가고 싶던 과를 입학사정관제로 제가 문닫으며 들어갔었습니다. 다행히 최저도 없어서 고3때 수능으로는 가지 못할 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기뻤지만, 저희 가족 모두 "운동도 못하는 놈이 무슨 체대냐, 재수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해도 잘 될거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대학교 1학년 처음 두달은 동아리 활동, 과 행사에 모두 참여하고 술자리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었습니다.
(처참했던 고3 수능성적.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내가 이 학교에 절하고 다녀야할 정도였다)
하지만, 체대 특유의 군기잡는게 저는 전혀 이해가 안되었고 과내, 체대내에서도 점점 신입생들 중심으로 반발감이 확산되자 선배들을 포함하여 교수님들조차 "체대의 전통이다" 라는 이유로 묵인했었습니다. 결국 체육학과의 학생회 멤버였던 한 신입생이 체육학과 규정 수십여개들을 적어놓은 A4용지를 포함, 톡방에서 선배가 들어올때 신입생들의 대답 등을 캡처하여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방송사에 제보한 결과 한 종편에서 직접 체육대학 학장을 취재하러 왔고, 결국 대부분의 규정들이 없어졌습니다. 뭐 지금도 암묵적으로 몇개의 규정들(다나까 등)은 계속해서 있는것처럼 보입니다만, 제가 다닐때는 선배가 있나 없나 계속 눈치를 봐야했고 500만원내고 이게 뭐하는짓인가 싶어서 반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집에서도 OK 사인이 떨어졌고, 동기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바로 고모집으로 가서 반수를 시작했습니다. 한달동안 독서실-집을 왔다갔다하다가 강남비상에듀라는 학원에 들어갔었고 그렇게 15수능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들 15수능이 물수능이라 했지만, 저는 물수능치고는 그렇게 잘본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니 뭐 거의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학교에 다시 돌아가기에는 동기들이랑도 연락을 안했고 정말 다시 그짓을 하기는 싫어서 삼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정시는 진학사에서 하란대로 해서 붙기는 했었습니다.
(6개월동안 공부하고 얻은 성적. 화학이 5등급에서 2등급으로 오른것말고는 딱히 변화가 없었다.)
(그때 처음 알았는데, 이과는 평균 3등급이 딱 세종대 공대 갈 정도다.)
그렇게 삼수를 선행반때부터 하게 되었고, 그 동안의 이야기는 제가 일기장에 썼던 것처럼 정말 어느때보다 열심히 했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했으며, 다시는 경희대에 돌아가기 싫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습니다. 탐구도 화1생2의 미련을 버리고 점수 잘나온다는 생1지1으로 바꿨고 선행반때부터 수학만 공부시간의 절반이상을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6월때 15234라는 성적을 얻게 되었고 수학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5등급으로 더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여름 내내 좌절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묵묵히 남들 모의고사 보고 영화보러갈때도, 주말에 힘들다고 안나올때도, 학원 자체 여름방학 때 다들 이때 쉬어야 그 뒤에 더 열심히 할수있다고 할때도 저는 학원에 꾸준히 나와서 밤 10시까지 공부했고, 독서실 가서 12시넘어서까지 자습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9월에는 23232라는 나름 괜찮은 성적을 받았고, 결국 수능때는 수험생활 처음으로 표준점수 500점을 넘겼고, 제 수험생활 중에 가장 높은 성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삼수했는데도 저성적밖에 안나왔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오르비나 수만휘 같은 커뮤니티에는 저보다 낮은 성적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보다 높은 성적을 받아 의대로 가는 케이스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건 그런 경우는 정말 극소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분들처럼 성적을 올리는건 거의 기적에 가깝습니다. 아니, 기적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게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운도 필요하겠지만 정말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저같은 경우에도 6평때는 60명 가까운 저희 반에서 뒤에서 4등을 했었는데, 수능때는 앞에서 5등을 했습니다. 아무리 잘하는 친구들이라도 수능때 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만으로 그 친구들을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공부 안하고 설렁설렁 놀다가 수능 망친 친구들은 '그래도 싸다' 라는 생각을 하지만,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수능성적은 그 전해랑 똑같은 친구들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보면 저도 이번 수능에 운이 좀 따라줬다고 봅니다. 수학에서 객관식 2문제, 주관식 2문제를 찍었는데 객관식 2문제 찍은걸 모두 맞추게 되어서 결국 살면서 처음으로 2등급이라는 등급을 받았으니까요. 만약 제가 내년에 수능을 다시 본다고 해도 저 등급을 받을 자신은 없습니다. 반수, 삼수하면서 느낀건 성적상승은 노력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운도 꽤 중요하다고 봅니다.
수능을 보고 가채점하자마자 저는 고모랑 껴안으면서 소리질렀습니다. 작년같았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대학교 논술 최저 기준을 맞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고대, 성대, 서강대, 한양대 등 이런 유명한 대학들에 논술보러가는것자체가 기뻤습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다 떨어졌지만, 논술에 투자한 돈, 시간을 후회한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시시즌에 돌입하게 되었고, 가나다군 모두 원서를 접수했습니다.
가군은 의대갈성적은 전혀 아니지만, 입학처에 문의해보니 저보다 환산점수가 낮았던 딱 한명이 작년에 추가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그래도 마지막인데 의대라도 한번 써보자는 생각에 집 근처 의대를 썼습니다. 나군은 어딜 쓸까 하다가, 한의대는 의사집안인 저희 집에서는 한의학에 대해 불신하기 때문에 전혀 고려를 안했고 나름 괜찮다는 전북대 수의대를 썼습니다. 다군은 의대쓸까하다가, 나군도 안정이긴 한데 올해는 경쟁률이 심상치 않아서 하향으로 제주대 수의대를 썼습니다.
그렇게 가군은 깔끔하게 광탈했고, 나군은 보시다시피 합격했습니다. 애초에 합격할거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니 이제 마음이 놓입니다.
아 직도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은 아쉬워하지만, 이제 어느정도 욕심을 버리신것같습니다. 삼수했는데도 의대를 못가면, 인정해야죠. 제가 의대를 갈 재능이 아니라는 것을. 전 정말 제 성적에 만족하고,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제 삼수 생활을 후회없이 했다고 자부하며, 나이 먹어서도 이 성공한 삼수 생활이 큰 밑거름이 될 것 같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여기에서 공대에 대해 몇몇 대학생분들, 대학원생분들께 여쭤보고 답변을 들었지만, 아쉽게도 제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어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조언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수의대를 진학하며 동물병원이 아닌 연구쪽으로 길을 잡으려고 합니다. 가족들 모두 대학원을 해외에서 보낼 돈은 충분하다며, 이제 열심히 살아라는 말씀을 하셨고 애초에 저도 해외유학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할것같습니다.
제 가 이 글을 쓸 때 탭을 보니, 일기장 탭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던데 그분들께 잘한 선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꾸준히 공부한다는 전제 하에서요. 시작은 좋지만, 한두번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떤 목표를 이뤄야할 때, 혼자서 묵묵히 하는 것보다는 친구들에게 말하거나 이렇게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하는 것이 훨씬 성공률이 높다고 합니다. 저도 친구들이 모두 군대를 가고, 연락 안하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연락을 하자니 정말 외로웠습니다. 학원에서는 제가 조언을 구하기보다는 동생들에게 조언을 하는 존재여서 정작 저는 누구에게서 위로와 응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꾸준히 연락한, 고마운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공부일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서로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커뮤니티지만 그 어느때보다 힘내라는 말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동안의 제 공부일기에서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수험생들이 꼭 자기의 목표를 이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