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저와는 완전 다른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과 저는 별 다른 점이 없습니다." 조세 무리뉴가 펩 과르디올라에 대해 말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발데베바스 훈련장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조세 무리뉴는 자신을 그대로 가져다놓은 실물크기의 광고판을 놔두곤 했다.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것을 놔둔 것은 아니었다.
2010년 챔피언스 리그, 무리뉴가 이끌던 인터 밀란이 준결승에서 펩 과르디올라가 맡던 바르셀로나를 누 캄프에서 이겼을 때 무리뉴의 이미지는 경기장을 달리고,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그런 터프한 이미지였다.
총합 스코어로 바르셀로나를 이기면서 무리뉴는 과르디올라가 이끌던 상승세의 바르셀로나를 물리칠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레알 마드리드가 그해 여름 그를 감독으로 선임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사진을 보면 왜 그가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을 맡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바르셀로나를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기 위해서다.
무리뉴는 스페인 축구계에서 과르디올라의 업적을 그 누구보다 깨고 싶어했다. 이번주 토요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리는 맨체스터 더비전에서 두 사람 간의 라이벌 관계는 더욱더 깊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과르디올라를 아는 사람들은 2012년 여름 안식일에 그가 바르셀로나를 떠났던 가장 큰 이유가 무리뉴가 스페인에서 그닥 만족스럽지 않던 두 시즌을 보내는 동안 경기 내적, 외적으로 무자비하게 맹공격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를 떠났을 때 무리뉴를 상대로 엘 클라시코 5승 2무 4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으로 지인들에게 이렇게 고백했다고 알려져있다: "무리뉴가 이겼어."
무리뉴와 과르디올라에 관한 예전 이야기를 살펴보면 참 흥미롭다.
때는 1997년 5월. 바비 롭슨 경이 이끌던 바르셀로나는 프랑스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결승전에서 막 파리 생제르망을 이겼었다. 경기장에서는 두 명의 남자가 서로 껴안았다. 당시 바르셀로나 미드필드의 스타 과르디올라가 한명이었고 다른 한명은 바비 롭슨의 통역 담당이자 친구였던 무리뉴였다.
그 이후 무리뉴는 그 순간을 찍은 사진을 건네받은 적이 있다. 그의 사무실에서 그 사진을 한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 사진을 가지고 있다.
"네, 여전히 껴안던 사진을 가지고 있죠." 무리뉴가 스페인 TV 방송국 카데나 세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리는 친했습니다."
한편, 조세 무리뉴는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이 될 수도 있었다. 그의 에이전트 조르지 멘데스는 2012년 로베르토 만치니가 우승컵을 놓치자 맨시티와 만난 적이 있다.
1년 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될 수 있었다. 알렉스 퍼거슨경이 은퇴하자 강력하게 그 감독직을 원했다.
그러나 2008년으로 돌아가서 그 때의 무리뉴가 정말 원했던 곳은 바로 바르셀로나였다. 자신보다 경험이 부족했던 펩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맡았다는 사실이 무리뉴의 마음 속 깊이 박혀있었고 이것이 두 사람간의 복잡한 관계의 시발점이 아닐까 싶다.
누 캄프에서 바비 롭슨을 도왔던 무리뉴는 2000년 팀을 떠나면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맹세했다. "오늘뿐만 아니라 영원히, 바르샤는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8년 후, 지금 시티의 단장을 맡고 있는, 당시 바르셀로나 단장 치키 베히리스타인과 마르크 잉글라는 리스본에서 무리뉴와 인터뷰했다. 무리뉴는 그들에게 팀을 떠난 프랑크 라이카르트를 대신할 선수를 자신이 고른다면, 바르셀로나 B팀에 있는 어린 과르디올라를 1군으로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더 재밌는 사실은, 과르디올라도 이미 무리뉴를 보드진에게 추천했다는 점이다. 10여년 전, 그들의 관계는 더욱더 깊어졌다.
"조세는 펩이 클럽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롭슨이 2011년 그의 자서전에서 무리뉴에 관해 말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죠: '이 놈과 친해지고 싶어요. 얘를 더 알고 싶네요.' 그리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들은 꽤 친했어요."
무리뉴는 2008년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거론된 여러 후보들, 아르센 벵거나 비야레얄의 감독이었던 마누엘 페예그리니보다 선임될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베히리스타인과 잉글라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던 무리뉴의 명성을 탐탁치 않아했고 현대 바르샤의 창조자라고 불리우는 요한 크루이프의 추천을 더 믿었다. 결국 과르디올라가 바르샤의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과르디올라 자신도 이 사실에 놀라했다.
"무리뉴는 그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에 상처를 받았죠." 잉글라가 그라함 헌터의 책 '바르샤 :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팀' 에서 말했다.
무리뉴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카탈루냐의 사람들 대부분 과르디올라를 받아들였다. 이 사실을 떠나서, 무리뉴와 과르디올라가 누 캄프에서 같이 일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흥미롭다. 실리를 추구하는 자와 이상주의자가 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아마 뒤늦게 깨달았겠지만, 바르셀로나는 1990년 후반 롭슨이 이끌었을 때처럼 둘의 관계를 확실히 할 기회를 놓쳤다.
"롭슨 감독님은 당신이 알고 있는것처럼 선수들에 대한 확신을 항상 가지고 있지는 않으셨죠." 이번주 스포츠메일과의 인터뷰에서 그 시대에 있던 한 선수가 말했다.
"감독님의 지시를 항상 알아먹을 수는 없었지만 펩과 무리뉴는 그 공백을 채우려고 함께 노력했죠."
그 당시 롭슨은 콘크리트 바닥에 분필로 자신의 생각들을 주로 그림으로 보여주곤 했다. 과르디올라와 무리뉴는 그 기하학적인 모양들을 말로 구체화했고 몇몇 선수들은 오히려 그 둘의 전술적인 계획을 더 믿었다. 결국 바르셀로나는 1997년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우승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 자신의 생각들을 나누곤 했죠." 과르디올라가 말했다. "친구였어요, 그것도 친한 친구."
2010년, 무리뉴가 결국 마드리드 감독으로 라 리가에 돌아왔을 때 인테르가 전 해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면서 둘의 관계는 이미 뒤틀리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둘은 완전히 남남이 되었다.
3년 반동안 프리미어 리그에서 무리뉴를 상대했던 퍼거슨은 그 해 니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과르디올라를 경고했다. "너 자신부터 챙겨. 조세는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으니깐."
과르디올라가 대답했다: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하지만 그의 예언은 완벽히 틀리고 말았다.
그 이후 두 시즌은 심각하게 나빠서 누가 최면을 거는 줄 알았다. 이탈리아 감독 아리고 사키는 스페인에 있는 그 둘을 "한 시대에 두 명의 피카소가 있는 것" 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렸던 그림들은 그렇게 이쁘지는 않았다.
바르셀로나는 첫번째 엘 클라시코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5:0으로 박살냈다. 그들의 경기력은 너무나도 뛰어나서 거실에서 경기를 보고 있던 맨유 주장 웨인 루니가 발로 박수를 칠 정도였다. 이후, 둘은 16개월동안 10번 넘게 서로를 상대했다. 2011년 봄에는 리그, 컵, 챔피언스 리그를 포함해서 18일동안 4번이나 붙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번 붙고 난 후 한 마드리드 선수가 한숨을 내쉰 것은 유명하다: 'X같은 엘 클라시코 좀 그만했으면" 이 기간은 스페인 축구 역사상 가장 어마어마했던 시절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바르샤 vs 레알. 칸테라 vs 카르테라 (유소년 vs 유소년). 과르디올라 vs 무리뉴. 이미 모든 라이벌 관계들은 시드 로가 쓴 '라 리가에서의 공포와 혐오'에서 서술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그 당시 무리뉴의 자아상이 자신에게 "NO"라고 했던 바르셀로나에 대한 전부였다고 당신에게 말해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로 차출되었을 때 바르샤에서 온 선수들과는 절대 말도 섞지 말라고 말했다. "걔네는 니네 친구들이 아니야." 그가 말했다.
확실한 건 과르디올라와 무리뉴가 팀을 맡으면서 쌓인 라이벌 관계는 어느때보다 더 강렬했다는 점이다. 두 시즌동안 그들이 맞붙었던 경기에서는 총 35골이 터졌지만 두 팀 사이의 원한은 어느때보다 깊다.
한편, 과르디올라는 '레알을 잡아먹는 야수'라고 불렸다. 2010-11 시즌 첫 네 번의 엘 클라시코에서 매 경기마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한명씩 부상으로 실려나갔다. 과르디올라 또한 무리뉴가 그라운드, 기자 회견장, 심판실에서 싸움을 부추기는 성향이 너무나도 강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반면, 무리뉴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연기한다고 주장했고 유니폼의 UNICEF 로고 때문에 더 후한 판정을 받는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참 유치하고, 속이 뻔히 보이고, 별로 보기 안좋고, 무엇보다 실제 축구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확실히 조용히 바르셀로나의 훈련장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보다는 박박 소리를 질렀고 마치 둘 중 하나가 자신의 감정을 더 표출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2011년 4월 27일, 바르셀로나는 네 경기 중 세 경기를 레알과 붙었다. 그 중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가 이겼다.
베르나베우에서 열리는 1차전을 치르기 전, 기자회견에서 클럽 임원들이 과르디올라에게 무리뉴를 2분 30초동안 공격하라고 조언한 것을 무시했고 이후 선수들은 이런 그의 행동에 기립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과르디올라가 말했다: "이 방에서 말입니다. 무리뉴는 그냥 X발 감독입니다. (fucking boss) 여기에서까지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4년동안 함께 했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는 저를 잘 알고 저도 그를 잘 알죠. 이정도면 충분합니다."
아마 이 점이 둘의 차이점일 것이다. 과르디올라는 한 때 자신이 알던 "제갈량"의 무리뉴를 최대한 자신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했다고 알려져있다.
반면, 무리뉴는 덜 감정적이다. 예전에 그는 El Pais의 스페인 기자 Lu Marti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사랑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네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수준의 축구계에서의 싸움은 삶을 바꿀 수 밖에 없고, 성격도 바뀌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관계를 파괴시킨다는 점이다. 이렇게 뒷이야기가 점점 쌓이면서 무리뉴와 과르디올라는 토요일 맨체스터에서 다시 그라운드 위에 같이 서있게 된다.
바르셀로나는 레알 마드리드만큼 돈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돈을 쓰기는 했다. 펩 과르디올라는 2009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영입하는 데만 6000만 파운드를 썼고 그 영입은 부적절한 영입으로 평가받았다.
내일 펩은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친숙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조세 무리뉴는 이브라히모비치를 맨체스터로 데려왔고 이브라히모비치 역시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과르디올라는 이브라히모비치를 영입했지만 사무엘 에투와 비슷한 상황으로 그를 떠나보냈다. 즐라탄 역시 두 시즌동안 바르샤에서 보냈던 기록은 화려한 커리어의 한 점의 얼룩이 되었다. 2010년 4월 무리뉴의 인테르가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3:1 리드를 지키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원정을 왔던 그 날 밤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과르디올라의 팀은 1:0으로 이겼지만 결국 인테르가 결승전에 진출했다. 이후, 이브라히모비치는 과르디올라를 '무리뉴 앞에서 딸딸이나 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자서전 '나는 즐라탄이다' 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와 그가 싸우는 하나의 전쟁이었다. 과르디올라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안녕이라고 인사조차 하지 못했던, 생각이 너무 많았던 사람이었다."
"나는 과르디올라가 무리뉴에게 콤플렉스가 있다고 실제로 생각했다. 무리뉴는 빅스타다. 그는 과르디올라와 정반대의 사람이다. 만약 무리뉴가 어두운 방을 환하게 비춘다면, 과르디올라는 커튼을 쳐버리는 사람이다. 나는 과르디올라가 그와 맞먹을려고 노력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브라히모비치는 두 시즌동안 라 리가를 23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과르디올라는 떠오르는 스타였던 리오넬 메시와 이브라히모비치를 융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결국, 이브라히모비치는 윙으로 밀려났다.
그 당시 스쿼드에 포함되었던 선수가 Sportsmail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메시가 문제였죠. 요즘에는 가장 재능이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공격수라도 옆에서 받쳐주지를 못했어요."
"만약 누군가가 그보다 더 많은 골을 넣고 더 많이 말을 했다면 그들은 문제를 겪게 되었습니다. 메시는 즐라탄을 경계했고 항상 과르디올라에게 그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죠."
"아시다시피 즐라탄은 매우 개성이 뚜렷한 선수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팀동료들과 농담을 자주 했고 모든 선수들이 좋아하는 선수였어요. 물론 자기자신에 대한 애정이 컸지만 적어도 그 애정은 순수했습니다."
"메시는 달랐어요. 대중들은 그가 밝고 착한 사람인 줄 압니다. 아무 말도 안했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남몰래 감독을 압박했고 계속 무언가를 요구했죠. 결국 과르디올라가 받아들였고 즐라탄이 쫓겨나게 됩니다."
이번주 토요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과르디올라는 출장정지로 인해 팀의 주포인 세르히오 아게로 없이 경기를 치르게 될 것이다. 반면 이브라히모비치는 프리미어 리그 첫 3경기에서 3골을 넣은 기세를 그대로 이어가려고 한다.
34살의 이브라히모비치는 전혀 동기부여가 부족하지 않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증오와 복수는 나를 움직이게 한다."
한 때 바르셀로나에 몸담았던 맨체스터 시티 회장 페란 소리아노는 조세 무리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방식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습니다. 경기를 이기고, 자리를 떠나죠."
소리아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그를 만나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스페인에서는, 항상 비슷한 감독들이 팀을 돌아가면서 맡았기 때문이다.
유나이티드는 실제로 2010년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앞서 그를 고용할 뻔 했다. 6년 전,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에 대한 패배로부터 회복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게 절실했고 결국 위험을 부담한 채 무리뉴를 선임했다. 레알 마드리드와 비슷하게 이번 여름, 유나이티드는 퍼거슨 이후 예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무리뉴를 선임했다.
과르디올라는 또다시 필드 안과 밖에서 계속해서 들어오는 맹공격을 버텨내야 하는 어려움에 처했다.
이제 45살인 과르디올라는 자신만의 무기를 갈고 닦았다. 그는 시티를 조금씩 변화시켜가고 있다. 조 하트 뿐만 아니라 몇몇 훌륭한 스태프들이 팀을 떠났다. 어떤 유소년 코치들은 훈련 세션이 초대된 사람들에게만 공개된다고 개인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과르디올라와 무리뉴는 이미 이번 여름 맨체스터에 도착한 이후 한번 만난 적이 있다. 두 명 모두 지난 달 스토크에서 열린 프리미어 리그 감독들의 모임에 참석했고 그들의 말에 따르면 서로 악수를 하고 기본적인 안부를 나눴다고 한다.
그러나 그를 아는 몇몇 지인들은 무리뉴의 이름을 말할 때 과르디올라가 신체적인 변화가 조금 있다고 말한다.
그의 자서전을 쓴 기옘 발라그는 이렇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졌습니다. 그의 목근육은 경직되고 어깨를 움츠리며 당신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과르디올라는 지난 24개월동안 스페인에서 무리뉴를 상대했을 때 매우 지쳤다는 것을 인정했다. "무리뉴와 만나면,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말했다. "너무나도 많은 일이죠."
여기 잉글랜드에서, 과르디올라는 최소한 무리뉴 효과가 다른 클럽의 감독들로 인해 조금은 약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오직 그 둘만이 중요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에는 아르센 벵거의 아스날, 위르겐 클롭의 리버풀, 그리고 물론 무리뉴가 사랑했던 첼시도 존재한다.
만약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과르디올라에게 집착했던 무리뉴가 또다시 집착한다면 다른 팀들은 더 높은 순위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리뉴가 그렇지 않는다 해도 한 때 서로 마음 속 깊은 것을 공유했던 그런 관계는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다.
한 때 무리뉴가 과르디올라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했었는데, 과르디올라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저는 제 행동을 고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