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킨 : "나에겐 맨유가 항상 1순위였지만 이적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항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가 될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이클 킨은 알렉스 퍼거슨 경과 올드 트래포드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던 선수들 중 한명인 그가 왜 지금은 번리에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했다. "코치님들은 때때로 다른 선수들이 이적하기 수월하도록 임대를 보낸다고 저에게 말씀하시곤 했지만, 저는 다른 팀으로 이적할 일이 없었어요. 제가 임대에서 돌아왔을 때 충분히 1군에서 뛸 실력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임대를 경험 쌓는 용도로 생각하신거죠. 그런데, 퍼거슨 감독님이 떠나고 모든 상황이 바꼈습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가 생각하는 가장 촉망받는 유망주들 중 한명인 킨의 입장에서는 그 다음에 일어난 일에 대해 분명히 조금은 후회했을거라고 생각한다. 재능 있고 야망도 큰 중앙 수비수인 그가 어떻게 번리로의 이적이 자신의 잠재력을 꽃피우게 했는지에 대해 설명해줘도 말이다.
그와 쌍둥이 형인 윌은 퍼거슨이 프리미어리그를 처음 우승했던 해에 태어났다. 두 소년 모두 올드 트래포드에서 뛰는 것을 꿈꾸며 자랐고 그들의 아버지는 예전 전광판쪽 자리에서 40년 넘게 시즌권을 보유해왔다. "아버지는 매 경기를 보러 가셨어요. 남는 티켓이 있을 때마다 저와 윌은 누가 그와 경기를 보러 갈 것인지를 두고 싸웠죠. 저에겐 항상 유나이티드가 제일 중요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21살이었을 때 번리가 처음 그에게 이적을 제의했을 당시 스스로 여러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무슨 내용이었냐면, 번리가 저를 영구 이적으로 영입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어요." 킨이 그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처음에는 정말 이적하기 싫었어요, 그냥 임대로만 가고 싶었죠."
"번리는 프리미어리그에 있었고 만약 그곳에서 제가 잘한다면 루이스 반 할 감독님께 충분히 1군에서 뛸 수 있다고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정말 잘했습니다. 하지만 반할 감독님께는 충분하지 않았죠. 결국 이적하는 걸 선택했고 이적하는 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 후로 번리라는 팀을 사랑하고 있거든요. 때때로 맨유에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이적이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거든요."
현재 24살인 킨의 폼은 2년동안 꾸준히 올라왔고 왜 맨유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켜내지 못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의 폼은 올라왔다. 성공적인 중앙 수비수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우스게이트는 이미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그를 뽑았다. 리오 퍼디난드는 그를 칭찬했고 수비의 예술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사람인 션 다이크는 번리의 포백 중 주전 한명을 단 200만 파운드의 헐값에 데려왔다.
"감독님은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킨이 말했다. "제가 어렸을 때 계속 믿어주셨고 감독님 역시 중앙 수비수로 뛰었던 경험을 살려 제가 공을 따내는 것을 잘하는 선수일 뿐만 아니라 저의 수비 능력을 개선시켜주겠다고 하셨어요. 시간 날때마다 사무실로 저를 데려가셔서 조언을 주세요. 저는 많은 경기를 뛰었고 대부분 그를 위해 뛰는 것처럼 느껴져요."
킨은 항상 유력 강등 후보로 뽑혀왔던 팀을 프리미어리그 12위로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토요일 FA 컵에서 만나는 링컨 시티에게는 나쁜 소식이겠지만, 첼시, 토트넘, 아스날을 넘어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좋은 홈 기록을 가지고 있는 팀이 바로 번리다. "링컨은 이 대회에서 정말 잘해왔습니다." 이미 입스위치 타운과 브라이튼&호브 알비언을 이기고 올라온 상대팀에 대해 킨이 말했다. "확실히 설렁설렁 뛰지는 않을거에요, 하지만 홈에서 열리는 경기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길거라고 생각해요. 뿐만 아니라 더 높은 라운드로 진출하겠죠. 그러면 어느순간, 웸블리에서 경기를 치르겠죠."
"우리 팀은 홈에서 거의 무적이에요, 지난 주말 첼시에게 1:0으로 지고 있다가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을 상대로 막판 5분을 남기고 동점 골을 넣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홈에서 강한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저 방법을 찾을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노력이에요. 뿐만 아니라 홈팬들이 저희 뒤에서 응원해주고 있어요. 적어도 제가 번리에 있었던 동안, 단 한번도 저희에게 야유를 보낸 적이 없습니다."
다음 주말은 헐 시티 원정을 떠나지만, 킨이 유일하게 아쉬워하는 것은 쌍둥이 형과 맞붙지 못한다는 점이다. "윌은 항상 특별한 선수였어요," 그가 말했다. "저는 절대 그만큼 잘하지 못했죠. 항상 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 반면, 윌은 타고난 스트라이커였어요. 항상 골을 넣고, 믿을 수 없는 볼터치에, 마무리, 스피드, 움직임까지.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아마 제 또래 선수들 중 수비하기 가장 어려운 선수였을겁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쌍둥이 형의 부상은 2012년 6월, 잉글랜드 19세 이하 대표팀으로 스위스와 맞붙었을 때 당한 부상이었다. "턴이 안좋았는데, 무릎이 돌아가버렸어요." 마이클이 말했다. 검사 결과, 모든 축구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십자인대 파열이었다. 잔인하게도 헐 시티의 감독인 마이크 펠란이 그를 맨유로부터 영입한지 세달만인 지난 11월, 또한번 십자인대가 파열되었다.
"그에겐 정말 힘든일이었죠." 마이클이 말했다. "사람들이 저한테 물어보더라구요, 쌍둥이니까 그가 부상당할 때 너도 고통을 느끼냐고. 실제로 그러지는 않지만, 우리는 정말 가까운 사이에요. 부랄 친구처럼 특별한 끈 같은 것이 저희 사이에 있죠. 가끔은 이상한 일도 일어나요. 정확히 동시에 같은 말을 할 때도 있죠. 하지만 자라면서 서로 경쟁하는 게 더 심해졌어요. 우리 같이 한 모든 게임에서 누군가가 질때까지 항상 싸웠죠. 이런 경쟁심이 저희 모두 이 자리까지 오게한 것 같아요."
맨체스터의 남쪽인 히튼 무어의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자라왔던 두 소년의 최종 목표는 같이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로 뛰는 것이다. 한편, 킨의 회사가 그가 스포츠를 위해 얼마나 헌신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가 말해준 하나의 에피소드는, 윌이 유나이티드로부터 프로 계약을 제안받은 날에 자신에게는 파트타임 장학금만을 제안했을 때 실망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 해에 학교 수업이 끝나고 유나이티드로 가서 일대일 훈련을 받았죠. 그 훈련이 다 끝나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난 여기서 잘하고 있는거야, 많이 발전했고 여기 있는 많은 선수들보다 더 잘할거야. 그래서 학교로 돌아가는건 멍청한 짓이나 마찬가지야.' 전 일주일동안 학교로 돌아갔어요. 학교 축구 대회를 치뤘고 그 다음날에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밝고 호감이 넘치는 킨은 스스로 공부해서 A-level (영국의 수능)에서 물리, 화학, 생물을 통과했다. 동시에 퍼거슨 감독에게 1군에서 충분히 뛸만한 선수라는 걸 확신시켰다. "감독님이 저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18세에 데뷔했을 때를 회상하며 킨이 말했다. "감독님이 바뀌고 기회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 실망스러웠을 뿐입니다. 프리시즌에 조금만 뛰었고 그 다음에는 우리 모두에게 끔찍한 단 한 경기에 출전했죠. 그게 끝이었습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경기는 2014년 8월, 캐피탈 원 컵에서 MK 돈스에게 4:0으로 졌던 경기다. 그 경기에서 뛴 선수들 중 지금까지 맨유에 남아있는 선수는 다비드 데 헤아가 유일하다. 킨은 다음날 아침 반할 감독의 불신을 기억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을 죽일 것 같았지만" 그는 그것이 감독님으로부터 마지막으로 듣는 말인지 알지 못했다.
"그 경기 후에 저는 21세 이하 대표팀 소속으로 뛰었습니다. 이적시장 마감일이었고 번리가 저를 영입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죠. 겨우 한 경기로 저를 판단하신 반할 감독님이 너무한거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선수라면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아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는 잘 뛰었고 딱 그 경기에서만 모든 선수들이 못했어요."
지난 여름, 레스터가 1500만 파운드를 제의했던 주인공인 그는 번리의 드레싱 룸에서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의 폼은 잉글랜드 국가대표 콜업까지 받을 정도로 올라왔다.
"처음에 션 다이크 감독님으로부터 들었어요," 지난 10월, 말타와 슬로베니아를 상대로 국가대표 스쿼드에 처음 포함되었을 때에 대해 킨이 말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님이 저희 감독님께 전화했고 클럽의 감독으로써 저에게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셨대요. 전 그 때 운전하고 있었고 전화를 받자마자 멈췄어요. 정말 놀랐거든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 맛을 알아버렸고 나중에 국가대표로 더 뛰었으면 좋겠어요."
출처 : Daniel Taylor / Guardian (링크)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이탈리아는 여전히 우승 시스템을 가진 감독들을 수출하여 트로피를 모으고 있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우승 시스템을 가진 감독들을 수출하여 트로피를 모으고 있다
2017.02.19 -
로베르토 바조 50살 기념 : TOP5 프리킥 장면들
로베르토 바조 50살 기념 : TOP5 프리킥 장면들
2017.02.19 -
안드레아스 페레이라는 어떻게 성공적인 임대생활을 보내고 있나
안드레아스 페레이라는 어떻게 성공적인 임대생활을 보내고 있나
2017.02.16 -
스티븐 은존지는 어떻게 라 리가의 슈퍼스타가 되었나
스티븐 은존지는 어떻게 라 리가의 슈퍼스타가 되었나
2017.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