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쓰게 됐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강하기 전에 이 글을 쓰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실습 때문이다. 나는 외과 실험실 소속으로 예과 2학년 겨울방학 때는 두 달 내내, 그리고 그다음 방학부터는 한 달씩 학교 병원에서 실습한다. 실습을 하면서 학부생으로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방학 중 한 달을 꼭 투자해야 하기에 이것 때문에 계획했던 것들을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뭐든 장단점이 있는 법. 그래도 아직까지는 실험실에 만족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오늘은 본과 1학년 생활에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제는 지나버렸지만, 정말 예과 2학년이 지나고 본과 1학년 생활을 해보니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힘들었다. 선배들도 그렇고 동기들 중에 본1 생활이 안 힘든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지금까지의 본2 생활은 본1보다 훨씬 더 할만한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위 사진에 나와 있는 과목들을 가나다순으로 내가 느꼈던 것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들을 중심으로 말해보고자 한다.
1. 수의기생충학 (Veterinary Parasitology)
기생충학 수업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땡시'였다. 본1 때 3~4번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교수님이 ppt에 기생충 생활사 그림을 띄워놓고 일정 시간 (아마 한 슬라이드에 20~25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땡 소리가 넘어가면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는 그런 방식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 기생충은 개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기생충인 Toxocara canis 이다. 이렇게 한 슬라이드에 생활사 두 장씩 띄워놓고 수능 때 옆줄이랑 시험지가 다른 것처럼 각 줄마다 해당하는 쪽 (왼쪽 혹은 오른쪽)의 그림만을 쭉 쓰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개 그림을 띄워놓고 각 장기별로 서식하는 대표적인 기생충을 쭉 쓴다.
이게 처음에는 시간에 대한 압박이 커서 땡시에 대한 스트레스를 동기들이 많이 받았었다. 그러다가 몇 번 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땡시의 경우 전날에 몇 시간만 힘들게 공부하다 보면 수월하게 통과했었다. 팁을 하나 주자면, cram.com이라는 사이트에 '기생충 땡시'를 검색하면 내가 만든 것도 있고 선배들이 만든 것도 있으니 그걸로 몇 시간 동안 힘들게 외우다 보면 잘 외워진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그랬고 다른 동기들도 그랬지만 기생충 수업을 다른 수업보다 조금 얕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흔히 우리들이 심장사상충이라고 하는 Dirofilaria immitis 와 같이 임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기생충도 있고 우리가 회나 생고기를 먹을 때 관리를 잘못하면 기생충이 우리 몸에도 들어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어 생각보다 실생활과 밀접한 과목이었다. 특히 대동물의 경우 진드기와 같은 매개체 (vector)에 의한 인수공통전염병이 흔한 편인데, 지구온난화에 따라 우리나라가 아열대 지역으로 변하면서 동남아 지역에서만 일어나던 그런 질병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상대적으로 기생충학의 중요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2. 수의미생물학 (Veterinary Microbiology)
우리 학교의 경우 미생물학이 두 교수님이 가르치신다. 세균학과 바이러스학으로 나뉘어 1학기 때는 세균학 2학점, 바이러스학 1학점 그리고 2학기 때는 세균학 1학점, 바이러스학 2학점으로 성적도 두 교수님이 학점에 따라 내신다. 미생물 수업은 그냥 달달 외웠던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잠깐 했던 생2와 조금 비슷했던 내용이 초반에 있어서 그때는 수월하게 수업을 들었다.
세균학은 시험이 교수님이 각 문제마다 단어 하나씩 주고 그에 대해 아는 내용을 아는만큼 쓰는 유형이었다. 1번부터 한 15번? 까지는 핵심 키워드만 넣어서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쓰는 문제고 그 뒤로 대여섯 문제는 핵심 키워드도 놓고 그와 관련된 곁 내용까지 모두 써야 하는 시험이었다. 정말 이 과목은 기출문제를 달달 외웠다.
바이러스학은 난이도가 다소 높았다. 뭐랄까, 시험도 OX 문제가 대부분이었는데 틀려도 감점이라 더 부담됐다. 그래서 수업도 열심히 들어야하고 공부도 대충 했다가는 완전 점수가 바닥일 수가 있었다. 그래도 교수님이 재밌게 가르쳐주셔서 잘 들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AI(Influenza virus)와 구제역(FMD virus - picornaviridae)이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바이러스학 역시 열심히 공부해놓으면 좋다.
3. 수의생리학 (Veterinary Physiology)
이제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최대 학점이 3학점인 줄 알았지만 생리학은 우리 학교에서 무려 4학점이다. 그만큼 이 과목만큼은 학점을 잘 받아놔야 평균 학점이 잘 나온다. 이 과목이 C+, D+이 나온 순간, 정말 본인에게 타격이 크다.
그러나 이렇게 학점이 다른 과목보다 높은 이유는 그만큼 이 과목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소동물 임상에서 일하는 수의사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씀이 학부생 때 열심히 해야하는 과목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생리학이라는 점이다. 특히 내과 과목은 생리학 공부를 제대로 해야만 이해가 되는 과목이라고 한다. 생리학은 기본적으로 동물들의 몸 속 대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관한 학문이다. 심장은 어떤 원리로 뛰는지, 신경 전달은 어떻게 되는지 등 정상적인 동물들의 몸속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배우는 과목이다. 그만큼 기본적인 과목이기 때문에 생리학은 열심히 해놓으면 좋다.
본과에 올라오면 대부분의 과목들이 달달 외우는, 암기 중점의 과목이라면 그중 생리학은 그 경향을 벗어나 '이해'가 중점인 과목이다. 또한, 교수님들이 좋아하시는 주제가 있는데, 예를 들어 심장 쪽을 좋아하시는 교수님이라면 그 부분만 몇 주동안 강의하시기도 한다. 따라서, 수업을 열심히 듣고 수업시간에 적어도 80% 정도는 이해해놔야 나중에 시험공부할 때도 편하다.
4. 수의생화학 (Veterinary Biochemistry)
생화학은 개인적으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과목이다. 인생 첫 재시를 봤던 과목이기 때문이다. 정말, 크리스마스이브날에 기말고사를 보고 크리스마스 때 공부하고 그다음 날 재시를 봤던 기억이 정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때 할 거 없었는데 공부라도 했으니 너무 좋았다 ^~^
생화학은 과목 명 그대로 화학과 매우 연관이 깊다. 젖산발효가 어떤 과정으로 일어나는지, 생2에서 배웠던 TCA 회로, 산화적 인산화 등을 학기 초에 배우는데 생2를 했다면 이 부분은 정말 쉽게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생화학 역시 '이해'가 중점인 과목이다. 나는 화학을 수험생 때부터 어려워했고 예과 때 배웠던 일반화학과 유기화학 역시 나에게 다른 과목보다 상대적으로 더 어려웠던 과목이었다. 이 과목도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고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암기로 이 과목을 넘기려고 했다가 재시를 봐버렸다.. 재시가 교수님이 만든 전지 크기의 대사지도를 싹 다 하나도 빠짐없이 외우는 것이라 암기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이해 없이 쌩암기로는 넘기기 힘든 과목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 중에 ALT(Alanine transaminase), AST(Aspartate transaminase)는 임상에서도 흔히 간기능 검사에서 사용되는 것이라 교수님이 강조하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5. 수의조직학 (Veterinary Histology)
조직학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현미경'이다. 조직학 실습은 선배들이나 우리가 여름방학 때 1주일 정도 시간을 내서 만든 슬라이드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각 장기나 조직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PPT로 정리해서 2~3주에 한 번씩 단원별로 제출했다.
위 사진처럼 말이다. 위는 고양이의 상피인데, 상피의 경우 어떤 층으로 나뉘는지 각 상피의 대표적인 특징이 뭔지 알아야 한다. 조직학은 다른 과목에 비해 현미경으로 직접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볼 수 있어서 머리에 잘 들어왔고 재밌었던 과목이었다.
6. 수의해부학 (Veterinary Anatomy)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본1 하면 떠오르는 과목이 바로 해부학이었다. 난 아직도 본1 첫 해부 실습 때 새벽 4시에 기숙사에 편입생 누나와 함께 들어가던 게 기억이 난다. 편입생 누나가 우여곡절 끝에 수의대에 들어왔는데도 정말 진지하게 휴학할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을 만큼 그 날은 정말 힘들었다. 다음날 1교시 수업에 지각할 뻔했던 것도 비밀. 시험기간이 아닌 이상 항상 아침에 씻고 나가는 나인데 그 날만큼은 안 씻고 모자 쓰고 수업에 갔었다.
해부학은 정말 기본 중의 기본 과목이다. 특히 내가 외과 실습 때 수술실에 들어가서 느끼는건데, 절개를 어느 부분을 해야 하는지, 어떤 근육을 젖히고 주변의 어떤 장기를 피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어떤 신경과 혈관을 조심해야 하는지 등 외과의 기초가 해부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해부학은 정말 중요한 과목이다. 특히 우리 학교 해부학 교수님은 되게 연구에 대한 열정도 넘치시고 수업에 대한 열정도 넘치시는 교수님이다. 그래서 교수님이 아는 만큼 최대한 우리에게 전달해주려고 하시다 보니 수업시간이 길어져 간간히 해부 수업을 힘들어하는 동기들도 보였다.
우리 학교의 경우 예과 2학년 2학기 때 골학을 배우고, 본과 1학년 올라와서 근육학을 배우며 해부 실습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아, 우리 학번부터 예과 2학년 2학기때부터 해부 실습을 진행했다. 포르말린에 절여 있던 카데바를 처음 봤을 때 그 느낌이란,, 이 글을 쓰면서도 포르말린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해부 실습을 매주 하며 PPT를 교수님께 제출한다.
위는 내가 해부실습 후 만든 PPT 중 한 슬라이드인데, 코 안의 가로 단면이다. 다른 내부장기나 그런 걸 보여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다소 잔인하고 또 비위가 약한 분들도 내 글을 볼 수 있기에 그나마 가장 덜 잔인한 부분을 가져왔다. 슬라이드를 보면 알겠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부위에 비해 크기가 작은 코임에도 구조들이 정말 많다. 저 중에서 보습코기관이라든지 교수님이 중요하다고 하시는 부분들을 다 알아놔야 한다.
해부도 땡시를 학기에 한번씩 보는데, 실습을 본인이 열심히 참여했다면 쉬운 편이다. 우리 학교는 교수님이 데몬스트레이션, 줄여서 데몬 영상을 찍어주셔서 그 영상을 모든 조들이 돌려보면서 실습을 진행하는데, 그 영상이 매주마다 많을 때는 열개 정도가 되기 때문에 그때 그때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몰아서 하기에는 너무 힘들다. 자기가 직접 잘라보고 신경이나 혈관을 찾고 사진을 찍는다면 정말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 잘 남아 있다. 확실히 경험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과목이었다.
사실, 본과 과목들 모두 중요한 과목들이다. 보통 수의대 커리큘럼이 본1,2는 비임상이나 기초 과목들, 그리고 본3은 임상 과목, 본4는 병원 로테이션 이렇게 되는데 간혹 임상을 목표로 하는 동기들이 정말 재미없어서 못 듣겠다고 나중에 열심히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나중에 임상으로 갈지 비임상으로 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무슨 과목이든 열심히 공부하는 게 좋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정말 많이 힘들어서 학교를 다니면서 대외활동을 한개도 안 했던 본과 1학년 생활이었지만, 그만큼 같이 실습 때 고생한 동기들끼리 더 끈끈해져서 좋았던 1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