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대 대학원 생활의 실질적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도교수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학원 생활의 성공과 만족도를 결정짓는 데 있어, '어떤 연구를 하는가' 만큼이나 '누구와 함께 연구하는가', 즉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은 많은 대학원생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대학원에 처음 들어가기 전에 지도교수님이 어떤 분인지 직접 이야기 해보고, 선배들에게도 들었을테지만 실제로 대학원생 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지도교수님은 다를 수도 있다.
교수님과의 거리
대학원에서의 지도교수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스승을 넘어, 연구 방향을 함께 설정하는 공동 연구자, 때로는 진로나 개인적인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멘토, 그리고 연구실 운영과 학위 과정을 책임지는 행정책임자의 역할을 복합적으로 수행한다. 예전에 어느 글에서 본 적이 있는데, 교수님이 중소기업 사장이라면 대학원생은 회사 직원이라는 비유가 딱 적절한 것 같다. 교수님이 연구 과제를 따오면 그걸로 학생들 인건비, 실험에 필요한 재료비 등등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집주인과 세입자로 비교하기도 한다. 학위과정이 끝나면 세입자는 집주인과 헤어지고 다른 집을 찾는다. 그렇기에 교수와의 관계는 단순한 상하 관계나 권위-복종 관계로 정의하기 어렵고, 그만큼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많은 대학원생들이 이런 고민을 한다. "교수님이 너무 어렵고 무서워 말 걸기가 힘들다"거나,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말해도 괜찮을지, 무시당하지는 않을지 걱정한다"거나, "이런 지시는 당연한 건지, 혹시 갑질은 아닌지 의문을 갖기도 한다". 이런 고민들은 결코 특정 학생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교수와의 건강하고 생산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성공적인 대학원 생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며, 여기서는 그 '적정선'을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교수님과도 '첫 인상'과 '기본 태도'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결정되는 첫 인상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소개팅을 했을 때, 1) 처음 딱 보자마자 외적으로 내 스타일인지 아닌지 알 수 있고 2)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랑 결이 맞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이 때 좋은 첫 인상을 주지 못한다면, 나중에 극복하기 힘들고 이는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실수를 한번 하면 '실수할 수도 있지~' 라는 반응이라면, 그렇지 못하고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실수를 저지른다면 '에휴 또 저러네' 이런 반응이 나온다.
대학원에 입학한지 얼마 안 됐을때, 지도교수와 처음 관계를 맺는 방식은 앞으로의 대학원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첫인상'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태도와 소통 방식에서 신뢰와 존중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라운딩이나 미팅에서는 단순히 참석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궁금한 점은 명확히 질문하는 자세가 좋다. 아직 아는 것이 부족하더라도 배우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소통할 때는 용건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작성하되 기본적인 예의(호칭, 마무리 등)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며, 답변 시간을 고려하여 미리 연락드리는 습관도 중요하다. 실험 진행 상황이나 결과를 보고할 때, 단순히 결과만 전달하기보다, 어떤 고민과 과정을 거쳐 결과에 도달했는지, 교수의 조언을 어떻게 반영했는지 등을 함께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는 방식이 훨씬 긍정적인 인상을 준다. 이는 본인이 연구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입학 초기에 보여주는 예의 바르고 주체적인 태도는 교수와의 관계를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대학원생이 아니라 '함께 연구하는 파트너'로 설정하는 첫걸음이 된다.
다양한 지도교수 유형
모든 교수가 같은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나의 지도 교수님은 위 짤에서 '느긋한' 스타일과 '구멍가게 주인'을 합친 느낌이다. 그렇다고 내 실험에 아예 관심이 없으신건 아니고 큰 틀만 정해주시고 세세한건 내가 진행하는 편이다. 그리고 장학금이나 연구 과제나 이런걸 제출할 때는 세세하게 봐주신다. MBTI가 16개여도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처럼 교수님의 스타일도 매우 복합적이다. 어떤 유형의 교수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소통 방식과 연구 스타일도 달라져야 한다. 몇 가지 대표적인 유형과 그에 맞는 대응 전략은 다음과 같다.
고전 권위형 - 직접적인 지시가 많고,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하는 경향이 있다
▶ 지시 사항을 명확히 이해하고, 자주 진행 상황을 보고하며, 판단이 어려운 부분은 질문을 통해 확인받는 것이 좋다. 연차가 쌓인다면 선조치 후보고도 괜찮으나 저년차 대학원생 때는 하나하나 확인 받는 것이 좋다(물론, 이건 작은 랩실이고 대학원생들이 좀 있는 연구실의 경우에는 윗년차에게 차례차례 컨펌을 받는다).
비관여형 - 최소한의 개입, "알아서 잘 해봐" 스타일
▶ 스스로 연구 계획과 일정을 철저히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명확한 결과와 계획 중심의 보고서를 준비하여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다른 유형보다 시간 관리가 매우 중요한데, 시간 관리 관련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하게 서술하도록 하겠다.
트렌디 연구형 - 최신 연구 기법이나 논문에 관심이 많고, 토론을 선호
▶ 최신 동향을 함께 공부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안하며 피드백을 구하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본인의 분야에 해당되는 저널들에 올라온 최신 논문들을 읽다 보면 요즘에는 이 연구가 핫하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멘토형 - 연구 외적인 개인적인 삶에도 관심을 보이며, 비교적 개방적
▶ 솔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되, 공적인 관계임을 잊지 않고 정중함과 예의를 유지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도교수님이 젊으신 분이라면 거의 형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지도교수라는 점을 잊지 말고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교수들은 여러 가지 유형의 특징을 복합적으로 가지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교수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유연하게 소통하고 행동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보고'와 '질문'의 기술: '말 잘하는 법'보다 중요하다
대학원 생활은 끊임없는 보고와 질문의 연속이다. 논문 초안 검토 요청, 실험 계획 상의, 결과 분석 보고 등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고 질문하느냐'는 교수와의 관계는 물론 연구의 질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진솔하고 명확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험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면 숨기기보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대안을 함께 논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수님, 이 부분은 제 실수로 인해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나왔습니다. 원인을 파악하고 재실험을 계획 중인데, 이 부분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요?" 와 같은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은 단기적으로는 질책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쌓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이는 여러분들이 졸업하고 사회생활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임상을 하다 보면 많은 실수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주사용량을 잘못 계산해서 10배로 주는 경우가 인턴에게서 종종 보인다. 실제로 이럴 경우에는 환축의 생명과도 연관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최대한 빠르게 윗년차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
질문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사실 확인 질문부터 시작하여, 점차 실험 설계의 타당성, 결과 해석의 다양성, 나아가 기존 연구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담은 질문으로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 좋다. 이는 연구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OOO입니다. 지난번 미팅에서 조언 주신 사항을 바탕으로 실험 계획 중 XX 부분을 다음과 같이 수정해 보았습니다. (수정 내용 요약) 추가적으로, 다음 단계에서 A 방법과 B 방법 중 어떤 방향이 저희 연구 목표에 더 타당할지 고민 중인데, 교수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관련 자료는 첨부해 드렸습니다. 시간 괜찮으실 때 잠시 논의 드릴 수 있을지요? 감사합니다."
교수님과 연락하는 방법은 메일이 될 수도 있고, 카톡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즉각적인 답이 필요할 때는 카톡으로 연락을 드리는 편이고, 어떤 자료를 교수님께서 확인해주셔야 할 때, 특히 여러 개의 자료를 보내드려야 할 때는 메일로 보낸다. 카톡으로 그런 파일들을 보내기에는 교수님과 나의 대화가 워낙 많아서 서로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교수님마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선배들이나 교수님께 직접 물어보자.
그리고 여러분이 대학원에 들어가면 신분상으로는 학생이지만, 나이로는 이제 학부생과는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사회생활에 있어서 매너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메일을 보낼 때 "안녕하세요, 수의학과 OOO입니다. 요청하신 자료 보내드리오니 확인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OOO 드림" 이런 식으로 하거나 업무 차 전화를 할 때도 소속을 먼저 밝히고 용건을 밝히는 등 기본적인 사회생활의 매너에 대해서 여러분이 숙지를 해줬으면 좋겠다. 요즘에는 유튜브나 이런 곳에 워낙 많이 '사회생활 매너', '비즈니스 에티켓' 등 올라와있기 때문에 한번은 꼭 봐보자.
피드백 수용과 갈등의 조율
교수의 피드백은 때로는 날카롭고 직설적일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피드백을 '나 개인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연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한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물론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만, 피드백의 핵심 내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연구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간혹 교수의 지적이나 피드백이 사실과 다르거나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정확한 데이터나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차분하고 정중하게 다시 설명하는 것이 현명하다. 만약 피드백으로 인해 감정이 많이 상했다면, 잠시 시간을 갖고 피드백 내용을 기록하고 객관적으로 재정리하며, 필요하다면 교수에게 면담을 요청하여 솔직하게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
지도교수와의 마찰이 심화되어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포닥 혹은 박사과정 고년차 선배나 연구실 선배 등 믿을 수 있는 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이나 중재를 요청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직접적인 대면이 어렵다면, 이메일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어려움을 차분하게 정리하여 전달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꼰대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가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피드백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가끔씩 인신공격을 하는 교수님들이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래서 모 학교 임상대학원 학생들은 정신과 약을 먹고 다닌다고... 이런 대학원에 진학했을 경우에는 너무 힘들면 휴학을 하거나 그만두자. 아무리 학위가 중요하다고 한들 여러분들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 대신, 무슨 일이든 그만두기 전에 꼭 신중하게 선택하자. 결국 책임은 본인이 지게 되므로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성과'로: 대학원 후반부의 전략적 거리두기
학위 과정 후반부, 즉 졸업 논문 작성, 학술지 논문 투고, 진로 탐색 시기가 되면 교수는 학생에게 더 높은 수준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기대하게 된다. 이제는 단순히 지시를 따르는 것을 넘어, 스스로 연구 방향을 설정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독립적인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정기적인 미팅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 먼저 미팅을 제안하고 논의할 안건(Agenda)을 미리 준비하여 공유하는 등 연구 진행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다. 교수의 의견을 존중하되, 자신의 연구 결과와 논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건강한 학문적 토론의 과정이다. 이는 특히 박사과정 학생에게 더 해당이 된다. 여러분이 대학원을 다니다 보면 석사는 적응을 다 했다 싶을 쯤에 졸업을 하게 된다. 그래서 박사 때 본인이 하고 싶은 주제로 연구를 하게 되는데, 박사과정 막바지는 이제 교수님과의 동등한 연구자로 대우를 받기 직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박사과정 디펜스가 엄청 빡센 이유가 교수님들이 본인과 동등한 관계의 연구자를 선별하기 위함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졸업 후 진로(취업, 박사 후 과정 등) 결정에 있어 지도교수의 추천서(Reference Letter)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학위 과정 막바지까지 교수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면서도, 학문적으로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기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무엇보다 수의대는 워낙 좁은 곳이기 때문에 지도교수님뿐만 아니라 같은 과 선후배, 그리고 다른 과 사람들까지 '적'을 만들지 말자.
결론: 지도교수는 신이 아니다
결국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이상적인 지도교수는 존재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지도교수와의 관계 역시 끊임없이 노력하고 가꾸어야 하는 대상이며, 그 관계의 질은 상당 부분 대학원생 본인의 성숙도와 노력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적정 거리감'이란 물리적인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연구 파트너로서 존중하고 신뢰하되, 건강한 긴장감과 독립성을 유지하는 '심리적 거리'의 문제이다.
궁극적으로 대학원 생활에서 지도교수와의 관계를 통해 지향해야 할 목표는, 단순히 지시를 따르고 배우는 것을 넘어, 교수와 '말이 통하는 연구자',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동료'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이 '예의'와 '효율', '의존'과 '자율'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든 수의대 대학원생 및 예비 대학원생에게 현실적인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