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네이버 블로그에 무슨 글이 있나 뒤지다가 예전에 썼던 글이 있어 가져왔다. 예과 1학년 여름방학 때 싱가포르에 있는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봉사자를 구한다는 글을 한 네이버 카페에서 봐서 지원하게 됐고 그렇게 1주동안 혼자 봉사했던 이야기다. 지금 기억해보면 딱히 수의학적으로 배운건 없었고 말그대로 봉사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 반 전 이야기니 지금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참고하길 바란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북대학교 수의예과에 재학중인 Tizona라고 합니다. 다른 대학교를 다니다가 반수, 삼수 끝에 수의예과에 진학했지만, 이전에 동물을 키워본적도 없고 동물에 관심이 없던지라 먼저 동물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에 이와 관련된 봉사활동을 여름방학에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인터넷을 찾아보던 중 지역에서 운영하는 유기견보호소와 아시아희망캠프가 주관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GVC16-03 Animal Concerns in Singapore 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유기견보호소에 가서 방학내내 봉사할까 생각했지만, 개인으로는 안받고 단체로만 받는다고 하길래 포기했고 (아마 지금은 아니지 않을까..?)동남아는 많이 가봤지만 그 중에도 싱가포르에는 한번도 가보지 않아 바로 이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현지에서 내는 참가비 자체가 비행기값과 맞먹어 조금은 부담됐지만 아시아희망캠프기구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프로그램을 주최하는 ACRES(Animal Concerns Research & Education in Singapore)도 NGO이기 때문에 이런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거라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느꼈고 그렇게 한국에서 혼자 싱가포르로 떠나게 됐습니다.
(아래부터는 편의상 경어체를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총 8개의 나라를 여행했다. 대부분 가족들이랑 다녀왔고 딱 하나만 작년에 친구랑 단둘이 갔다. 그런데, 이번 싱가포르행은 나혼자 떠나는 것이었고 게다가 목적이 여행이 아니라 봉사활동이었기에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 출국하기 전, 현지에서 보내온 서약서를 읽던 중 "단순 휴가 목적으로 온거라면 오지 마라"는 글을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출국하는 날이 되었고, 인천공항에서 밤 11시 반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새벽 4시 (현지시간)에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현지에서 쓸 USIM 카드를 사고 1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 현지 리더를 만나기로 한 Chao Chu Kang 역에 도착했다.
그렇게 현지 리더인 Chang Kee 씨를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베트남 커플 Tao 와 Hai를 만나 근처 물고기 농장으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일주일동안 봉사할 곳인 ACRES에 도착했다.
[ ACRES 정문 옆 간판]
CK씨를 따라 사무실 앞으로 갔더니 네마리의 개가 격하게 반겨주었다. 말만 들으면 반갑게 맞이해준것같지만 사실 정말 무서웠다. 스태프들에게 들으니 이 개들이 원래 낯선이가 오면 엄청 짖는단다. 나중에 내가 봉사활동 후 스웨덴 친구와 함께 쇼핑을 갔다왔는데 4마리의 개가 한꺼번에 달려와 엄청 짖다가 결국 한마리의 개에게 물리기도 했다. 살짝 물리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웬만하면 밤에는 나가지 않았다. 여튼, 숙소에 짐을 풀고 조금 쉬다가 베트남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여기에서 제공하는 모든 음식은 절대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동물을 보호한다는 이유였는데, 여기에서 이사람들이 정말 동물을 아낀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에도 아침은 시리얼 + 우유, 점심과 저녁은 밥 + 야채 혹은 면 + 야채 이렇게 먹었다. 맛은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그곳에서 스웨덴 누나인 Moa를 처음 만났고, 다음날에는 영국 에딘버러대에서 나와 똑같은 수의학을 전공한 Alicia를 만났다. 두 명 모두 나와는 다르게 2주간 인턴십 목적으로 ACRES에 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봉사가 아니라 인턴으로 갔어야 했다. 최근에 아쿠아리움에서 인턴십을 한 적이 있는데 봉사와는 다르게 배우는게 되게 많았다.)
그렇게 직원들과도 인사를 하고 2시부터 일하러 갔다. 자원봉사자 담당 직원인 Richard가 우리에게 일을 주었는데 Tao와 Hai는 거북이들에게 줄 나뭇잎을 자르고, 나는 야생동물 구조에 쓰는 우리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첫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날씨가 정말 습하고 더워서 땀이 줄줄 흘렀다. 나는 물로 팔을 적셔가면서 했지만 베트남 친구들은 정말 더워보였다. 하지만 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베트남은 거의 40도에 육박한다며 이 날씨는 습하기만 할뿐 별거 아니랜다. 참 부러웠다. 그렇게 다시 우리를 청소하다가 우리 안에 있는 수건들을 보니 이물질들이 정말 많았다. 특히 피가 수건 곳곳에 묻어있었는데 ACRES가 야생동물 구조를 할 때 종종 다친 동물들을 데려오기 때문에 그런것이라고 했다. 그것을 보고 참 이사람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1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동물보호활동을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첫날의 봉사활동을 한 후 참 재밌는 일이 생겼다. 베트남 커플들이 너무 힘들어서 나가고 싶어했다. Tao가 원래 동물들을 무서워하는데 첫날부터 너무 힘든 일을 시키니 그만두고 바로 나간다고 했다. 남자친구인 Hai는 그냥 묵묵히 여자친구가 간다고 하기에 따라갔고 그렇게 그들은 사진 몇장을 찍고 그대로 ACRES를 떠났다. 그 이후로 4명이 잘 수 있는 방은 나 혼자 쓰고 그 주부터 시작하는 자원봉사자는 나 혼자밖에 있지 않았다. 그 날 밤만 해도 그만둘까 생각했다. 애초에 각오하고 왔긴 했지만 과연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내가 결정한 일이고 이정도도 못견디면 내 자신에게 패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열심히해보자고 내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침대에서 누워서 쉬고있는동안 잠깐 눈을 감았는데 떠보니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그렇게 나혼자 쓰게 된 방. 그래도 혼자써서 편했다.]
[밥먹을 때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식당]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방 문을 열고 나가면 이런 모습이 보인다.]
다음 날부터는 베트남 친구들이 떠나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일을 시켰다. 수의대에 다니지만 동물에 관해 아무런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일만 했다. 다른 자원봉사자인 Moa와 Alicia같은 경우 자원봉사보다는 인턴십에 가까웠다. Moa는 생명과학 관련 회사에 재직중인데 그 중에 파충류를 더 잘 다루고 싶어서 ACRES에 왔고 Alicia는 이미 2학년이었다. (한국의 수의대는 6년제인 반면, 영국의 수의대는 4년제 혹은 5년제이다. 싱가포르에는 수의대가 없기 때문에 Alicia는 싱가포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갔다.) 때문에 그 둘 모두 나보다는 기본적인 지식이 풍부해서 다른 일을 하였다.
Richard는 차근차근 처음부터 나에게 모든 일을 설명해주었다. 첫날에 ACRES에 어떤 동물들이 있는지 다 돌아다니며 설명해주었지만 나는 아직 싱글리시(Singapore + English = Singlish)에 익숙하지 않아 절반정도만 이해했다. 어떤 일을 일주일동안 했는지는 아래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기본적으로 내가 다룰 동물은 거북이들이었다. ACRES에는 왜인지는 못 물어봤지만 거북이만 거의 100마리였다. 수컷과 암컷이 따로 있었고 물속에서 사는 거북이들 몇마리, 육지에서 기어다니는 거북이 몇마리가 있었다. 매우 큰 거북이 2마리를 제외하고는 다 작은 편이었다. 수컷은 한손에 한마리씩 들 수 있었고 암컷은 한손으로 들기 조금 버거운 무게였다. 그곳에서 처음 아는 사실은, 거북이를 부를 때 turtle 뿐만 아니라 tortoise 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후자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한국에 와서 찾아보니 turtle은 물 속에서 사는 거북들을, tortoise는 육지에서 사는 거북들을 말한다고 한다. 내가 다룬건 대부분 tortoise들이었다. (최근에 아쿠아리움에서 인턴십할때 담당 수의사에게 이 차이점을 또 물어봤는데 지금 읽어보니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나의 기억력이란 :() 이런 거북들 뿐만 아니라 옆에 Quarantine 에는 이구아나, 뱀, 원숭이 들이 있었으나 마지막 날에 이구아나에게 먹이를 주고, 우리를 청소하는 것 외에는 딱히 접할 일이 없었다. 특히, 원숭이는 전염병에 걸려 있어서 접근조차 못했다.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나는게 원숭이가 광견병(rabies)에 걸려서 위험하다고 들었던 것 같다.)
살면서 거북이들을 한번도 키워보지 않은 내가 일주일동안 매일매일 100마리에 가까운 거북들을 다루다보니 거북이들을 볼때마다 친근감을 느꼈다. 이제 내가 하루하루 어떻게 봉사를 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장화를 신어야 한다. 아무래도 호스로 물을 뿌리는 일이고 비가 단시간에 100mm 가까이 쏟아지는 스콜이 발생하는 날에는 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우비를 쓰고 해야 한다. 따라서 장화는 기본이다. 운동화를 신고 하다가는 거북이 똥, 흙, 물로 뒤덮인 신발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저 장화는 베트남 친구인 Hai가 자긴 베트남에서 장화 신을 일이 없다면서 주고 갔다. 덕분에 일주일간 잘 썼지만, 나도 한국에서 장화신을 일이 없어서 쿨하게 ACRES에 놔두고 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쿨하게라는 단어가 너무 웃기다)
방에서 나와 사무실을 지나고 거북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중 이런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이 내가 앞서 말했던 Quarantine, 즉 검역소다. 저 간판에는 야생동물 구조 & 재활 센터라고 써져있기는 한데, 그 말도 맞다. 이 건물 안은 찍지 못했지만 다친 동물들을 치료하는 곳이 따로 있었다. 이 곳에는 수의사 한분이 계셨다. 아쉽게도 내가 이 건물에 들어갈 일이 없어 그 분과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Quarantine을 조금 지나면 ACRES Sanctuary라는 간판이 보인다. 간단히 말해서 안식처, 피난처 같은 곳인데 여기가 내가 주로 일했던 곳이다. 간판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위와 같은 사진이 보인다. 여기는 나보다는 Richard가 주로 일했던 곳이다. Richard는 내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 거북이들의 먹이를 만든다. 내가 맡은 일을 일찍 끝내서 옆에서 잠깐 지켜봤는데 배추를 거북들이 잘 먹도록 알맞게 썰고 보충제 가루를 넣는다. 마치 우리가 몸이 허하다 싶을 때 영양제를 따로 사먹는것처럼 말이다. Richard는 반나절동안 먹이만 만들었다. 아무래도 100여마리에 가깝다보니 엄청난 양의 먹이를 만들어야했다. 나같은 자원봉사자가 없을 때는 이 일을 혼자서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Richard가 먹이를 만드는동안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거북이들에게 물을 주는 것이었다. 사실, 물을 먹는지 안먹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 속에 사는 거북이들은 물을 마실 필요가 없으니 그렇다쳐도 내가 일을 하는동안 거북이들이 물을 마시는 모습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내가 그때 한번도 못본게 신기하다. 육지에 사는 거북이도 그렇고 모든 동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항상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될때쯤이면 깨끗하던 물그릇이 매우 더러워졌던 것만으로도 이친구들이 물그릇을 지나가긴 지나갔구나 라고 생각하긴 했다. 전날 오후에 씻어놓은 그릇들을 내 마음대로 적당한 곳에 놔두고 물을 붓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물을 주고 이제 거북이들을 우리에서 꺼낸다. 우리보다는 잠자리라고 해야할까? 잠자리에서 거북이들을 꺼내고 먹이가 있는 곳에 적당히 나눈다. 모든 거북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거북이 몇마리가 밥을 못먹는다면 자리가 남는 곳으로 옮겨준다. 거북이들이 밥먹는 모습을 보면 참 귀엽다. 혀를 내밀며 배추를 씹은다음 아삭아삭 소리나게 맛있게 먹는다. 거북이들과 사람이 먹는것은 다르지만 이래서 사람들이 인터넷 방송으로 먹방을 자주 보나 싶기도 했다. 거북이들이 밥을 맛있게 먹는동안 나는 거북이들의 잠자리를 깔끔하게 청소하고 다시 만드는 작업을 한다.
먼저, 거북이들이 전날밤에 잤던 잠자리를 정리한다. 바로 위 사진을 보면 내가 검은 판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라 얼굴 나온 사진은 다 뺐다) 저게 바로 거북이들의 잠자리다. 검은색 보드 안에는 신문지 위에 거북이 똥과 남은 먹이들이 널부러져 있다. 첫날 저거를 치웠을 때 거북이 똥냄새가 조금 심해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며칠하고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저걸 일일이 하나씩 빼고 신문지는 양쪽에서 가운데 방향으로 포개서 바로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 검은 판들을 물로 씻은다음 말린다. 검은 판 위에 얇은 검은 천이 있는데 그거는 따로 씻지 않는다. 천들은 한꺼번에 한달에 한번정도 세탁기로 빨고 평소에는 그저 잠자리 위에 말려놓는다. 검은 판들이 다 마르면 다시 저 상자 안에 깔고, 검은 천을 올리고, 신문지를 올린다. 우리가 보통 보는 종이신문지를 활짝 펴면 저 상자의 3분의 2정도 채워지는데, 최소 5장이상씩은 포개야한다. 왜냐하면 한 상자에 최소 8마리에서 10마리가 넘기 때문에 이들이 하룻밤동안 싸는 똥이 저 검은 판들로 스며들면 정말 치우기 번거롭다. 저렇게 신문지를 깔면 Richard가 알아서 먹이들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거북이들을 다시 잠자리에 올려놓고 먹이가 놓여져있는 매트를 깨끗이 씻고 말리면 하루의 일과는 끝이다.
쓰다보니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처음 며칠동안은 하루 일과가 끝나자마자 씻고 너무 피곤해서 저녁도 안먹고 잠을 자버리는게 부지기수였다. 싱가포르에 가기전까지 방학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활동량이 적은 탓도 있겠지만 나홀로 저것들을 다하니 꽤 힘들었다. 그래도 거북이들이 잘 먹고 다음날에 또 잘 기어다니는걸보니 뿌듯했다. 딱 한가지 흠이 있었다면, 정말 건강하던 거북이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원래 거북이가 아프면 사람이 감기에 걸린것처럼 코에서 콧물이 계속나오고 눈이 빨개진다. 그런데 멀쩡하던 거북이가 갑자기 내가 일하는 날에 죽었다. 그걸 제일 처음에 발견한 것은 나였는데 처음에는 애가 가만히 있길래 자고있나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와도 몇시간동안 그자리에 있는걸보니 심상치 않다 싶어서 Richard에게 데려갔더니 얘가 죽었단다. 거북이는 죽을 때 눈을 감고 네 다리를 모두 쭉 뻗은 채로 죽는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내 장화가 풀 색이랑 비슷해서 먹는거인줄 알고 계속 따라오던 거북이들 중에 한마리였는데 참 아쉬웠다.
마지막날에는 내가 맡은 일들이 빨리 끝나서 Quarantine 안에서 일을 도왔다. 이구아나의 우리를 청소하고 먹이를 주는 과정이었는데 일주일동안 거북이들만 다룬 것 같아서 조금은 아쉬웠다. 만약 일주일 더 있었으면 거북이들뿐만 아니라 이구아나들도 더 다룰 수 있었을 것이다.
ACRES에서의 마지막 봉사활동이 끝나고 나는 평소처럼 씻고 방에 들어가서 쉬고 있었다. 그 때 Alicia도 마지막 날이었는데 인사를 Bye~ 이거 하나로 끝내버렸다. 마음같아서는 같은 수의대생이기 때문에 번호나 페이스북 친구추가라도 해서 나중에 연락하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고 결국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Richard와도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했다. 평일과 주말에 일하는 스태프들이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아버려서 Richard도 주말에 오는줄알고 인사를 안했는데 그 이후로 그녀를 보지 못했다. Moa와는 그나마 친해서 전날밤에 길게 이야기를 했지만 또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했다.
이번 봉사활동은 정말 나에게 큰 경험이 되었다. 가장 큰 경험은 동물을 다루는 것보다 외국인들과의 소통이었다. 나름 제일 자신있던 과목이 영어라 어느정도 이야기가 통할 것 같아 마음편하게 갔는데 처음에 외국인들과 이야기하기 정말 어려웠다. 싱가포르 사람들 특유의 영어발음은 나중에 적응됐지만 문제는 Moa와 같은 순수 영어발음도 내가 못알아먹었다는 것이다. 영어를 이해했다고 치자. 문제는 내 스피킹이 정말 부족했다는 것이다. 머릿속에서는 한국말이 계속 떠돌았는데 그걸 말로 하자니 계속 버벅거렸다. 살면서 외국인들과 이렇게 프리토킹을 한 적이 처음이라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은 이 때보다 많이 늘었다. 알아먹는 것도 웬만하면 다 알아먹지만 여전히 스피킹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올해 목표 중에 하나는 토플 100점을 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2학기에 개강하면 영어회화수업을 따로 들을 예정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최종 목표는 통역으로 2018 평창 올림픽에서 자원봉사하는 것으로 정했다. (영어회화수업은 실제로 학교에서 일주일에 두세번정도 밤마다 두 시간씩 들었지만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아 한두달 정도 듣고 가지 않았다. 평창 올림픽 봉사는 정말정말 하고 싶었지만 실험실을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 여전히 후회되는 일들 중 하나다.)
하지만,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나의 안 좋은 성격들 중 하나는 낯을 가린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낯을 가리는데 영어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내 자신이 소외되는 느낌이 들었다. 봉사활동을 다 하고 내 방에서 쉬다가 "나도 중간에 그만둘까?" 라는 생각을 몇번 했었다. 한국인은 나 혼자였고 이미 Moa와 Alicia는 스태프들과 일주일동안 지냈기에 친해졌었다. 마음같아서는 먼저 다가가고 싶었지만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그들과 격리시켰다. 내가 스태프들, 자원봉사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이런 기회가 또다시 온다면, 절대 이번처럼 지내지는 않을 것이다. "남들에게 먼저 다가가자." 이것을 꼭 마음에 두고 살아가고 싶다.
항상 첫 경험은 많은 도움을 준다고들 한다. 이번 봉사활동 역시 내 자신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삼수생활이 나의 의지와 인내심을 길렀다면 이번 워크캠프는 나의 적극성과 친화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귀중한 경험을 하도록 프로그램을 소개주켜주신 주최기관 아시아희망캠프기구와 주관기관 코리아플라자히로바에 깊이 감사드린다.
오랜만에 정독해보니 오글거린다 ㅋㅋㅋㅋㅋㅋ 내가 예과 1학년 때 저랬구나.. 나름 나의 첫 해외봉사였고 그 뒤로 지금까지 학교 혹은 사기업에서 주관하는 해외봉사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이 봉사 전에 국제회의에서 통역하는 봉사도 하긴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했던 수많은 대외활동과 봉사활동의 처음이라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것은 저렇게 봉사를 하든 대외활동을 하든 후기를 남겨야겠다는 점이다. 최근에 동물원과 아쿠아리움 실습을 했는데 조만간 후기를 남길 예정이다. 저런 봉사 말고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수의대생으로써 할 수 있는 해외봉사가 나름 있으니 한번쯤 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