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래 글에 이은 본과 2학년 생활, 두 번째다.
2020/02/15 - [VET'S Life] - 수의대생의 수의대 이야기 7. 본과 2학년 생활 (1)
1. 식품위생학
식품위생학은 원래 다른 교수님께서 하시다가 2년 전에 새로 임용되신 여자 교수님이 출산휴가를 다녀오시고 작년에 처음 수업을 하셨다. 이전에 서술했듯이 역학에 관심이 많아 이 교수님 수업을 열심히 들었고 정말 재밌게 들었지만 학점은 B+,, 우리나라에서 역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은 이 과목을 가르치시는 교수님과 학교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강원대나 서울대에 한분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다음 학기 때 교수님이 프로젝트를 따오시면 아직 대학원생이 없기에 학부생으로서 도와드리려고 한다.
식품위생학은 말 그대로 우리가 먹는 음식의 위생에 대해 다루는 학문인데, 처음 이 강의를 들었을 때 가장 헷갈렸던 것이 '식품위생'에 대한 개념이었다. 식품위생을 영어로 하면 Food hygiene인데 이는 음식이 생산될 때부터 소비될 때까지 음식이 안전하게 전달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 환경들을 말한다. Food safety는 음식으로 인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음식의 가공, 준비, 보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술하는 과학적인 가이드라인을 말한다. 최근에 공중보건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중요해지고 있다. Food security는 사람들이 음식이 없어 굶는 상황이 아닌 상황을 말한다. Food quality는 말 그대로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음식의 질을 말한다. 중간고사 때 이 개념들을 비교하는 문제가 나왔는데 솔직히 나올지 몰라서 대충 넘겼다가 막상 시험 때 완전 반대로 썼던 기억이 있어서 앞으로 헷갈릴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이 외에도 기억나는 것은 HACCP 제도, 도축 검사 시 전체 폐기 처리해야 하는 질병들 등이 기억난다. 아무래도 교수님이 처음 가르치시기도 하고 짧은 시간에 비해 많은 양을 가르쳐야하는 그런 압박감 때문에 수업을 정말 정신없이 나가셨는데 피드백을 어느 정도 드렸으니 올해 본2들은 더 수월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2. 실험동물학
실험동물은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제약회사부터 시작해서 화장품 회사, 생명과학 쪽 회사, 연구소 등등 실험동물이 쓰이는 곳은 정말 다양하다. 대학교에서도 전공이 생명과학 쪽이라면 한번쯤 마우스나 랫트로 실험을 할 것이다. 실험동물학은 이렇게 주로 쓰이는 마우스, 랫트뿐만 아니라 기니피그, 토끼 등의 설치류와 원숭이 등의 영장류까지 다루는 학문이다. 우리 학교 교수님은 마우스, 랫트 등의 설치류를 전공하셨기 때문에 수업 역시 그쪽 중심으로 배웠다. 지도교수님이기도 하셔서 학기 초반에 인사도 드릴 겸 찾아뵌 기억이 있다. 입학한 지 4년 만에 지도교수님을 찾아뵌 게 조금 죄송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학기에 한 번씩은 인사드릴 예정이다.
실동 수업은 다른 과목에 비해 조금 빡센 편이었다. 일단 배우는 양이 워낙 방대하기도 하고 기말 때는 정말 양이 많아서 버거운 편이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잘 넘겼다. 교수님도 자신만의 가치관이 확고하신 분이라 그것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경직되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발표 점수도 중요하다고 해서 오랜만에 발표 준비도 열심히 했던 과목이다.
위 기사 (본문 : 링크) 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최근에는 동물실험의 대체 기술이 점차 도입되고 있다. 이미 EU나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화장품 회사에서 동물실험을 하면 안 된다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통과된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작년 말에는 경북대 수의대에서 실험견들을 정식 실험동물 공급자가 아닌 식용 개 시장에서 사 와서 논란이 된 바 있다. (기사 링크) 우리나라에서도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물실험에 대한 학계의 입장도 점차 변하고 있다. 나 역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은 동물실험에 대한 대체 기술이 실제 실험을 완벽하게 대체할 정도는 아니다. 예를 들어, 신데버 모델은 하나에 5천만 원 정도 하는 매우 비싼 가격이다. 수의대에서 한 학기당 실습비로 200만 원이 제공되는데,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수의대에서는 신데버 모델을 2명당 1개 정도 사용한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만약 수의대에서도 이렇게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예산이 추가되어야 한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아직은 이르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3. 인수공통전염병학
인수공통전염병, 줄여서 인공은 내가 제일 관심이 있던 과목이다. 수의대에 처음 입학했을 때 원했던 의대에 못 간 만큼 사람과 최대한 연관성이 있는 전염병을 공부하고자 했다. 그러다가 인수공통전염병을 알게 되었고 사람, 동물, 환경이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여 있다는 개념인 '원헬스(One Health)'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의학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한 학문이다. 그중 예방의학인 인수공통전염병학은 동물에서 사람에게 전파되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학문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박쥐 같은 동물에서 전파된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미리 예방하는 것이 수의사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수의학적으로 읽어볼 만한 글
1. 수의사 출신 SBS 기자가 쓴 글 : 링크 1
2. 미생물학 교수님이 쓰신 우한 폐렴과 코로나바이러스의 과학적 이해 : 링크 2
3. 역학적으로 바라본 코로나바이러스 : 링크 3
우리 학교에서 인공 과목은 어마 무시한 과목이다. 우리 학교는 웬만하면 유급을 안 시키는 학교인데, 거의 유일하게 F를 주시는 교수님이 이 과목을 가르치신다. 내용 자체는 재밌게 들었지만, 항상 수업시간에 긴장된 상태로 수업을 들었고 시험도 모두 서술형 문제에다가 질병의 원인체, 특징, 역학 등을 모두 달달 외워야 하는, 본2에서 제일 힘들었던 과목이다. 한 학기만 들어서 다행이지 만약 이 과목이 1년 동안 듣는 과목이었으면 본2가 본1보다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만약 우리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다닐 예정인 학생들은 평소에 공부를 잘 안 하는 편이더라도 꼭 이 과목만은 열심히 듣도록 하자.
4. 수의약리학
본과 1학년 때 해부학이 메인이었다면, 본과 2학년은 약리학이 메인이다. 사실 본 1 때 해부학의 존재감을 생각하면, 본과 2학년 과목들은 다 비슷했는데 유난히 약리학이 외울 양도 많고 난이도가 어려워 체감 상 가장 힘들었던 과목이다. 무엇보다 약리학 교수님들 세 분 중 한 분이 1학기 OT 때 수의대 입결을 공개하며 내 첫 번째 글에 올렸던 성적표를 수업시간 PPT에 봐서 정말 정말 당황했다. 아마 내 블로그를 아는 동기 몇 명은 나인걸 눈치챘겠지만, 대부분 모르기에 그때 주변 반응을 보니 '저 성적으로 들어온다고?' 이 반응이었던 것 같다. 애들아, 그래도 최초합 마지막으로 문 닫고 들어왔어,,
약리학은 정말 정말 중요한 과목이다. 특히 임상을 할 예정이라면 더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평소에 열이 난다던지, 콧물이 나온다던지, 그러면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어딜까? 병원에서 처방받지 않는 이상 바로 약국을 가장 먼저 간다. 수의학에서 약물은 김치 없이 밥을 못 먹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김치와 같은 존재다.
예를 들어, 중성화 수술을 한다고 하자. 수술을 시작하기 전, 마취 평가를 하고 전 마취제로propofol을 사용하여 잠시 마취를 시키고 삽관을 한 다음 isoflurane이나 sevoflurane으로 호흡 마취를 유지한다. 수술 중 감염 방지를 위해 항생제인 cefazolin과 진통제인 tramadol을 일정 주기마다 투여한다. 수술이 끝난 후에도 2차 감염 방지를 위해 항생제와 소염제를 투여하고 만약 투여한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변비가 발생한다면, 위장 운동 항진제를 투여한다. 간이 안 좋은 친구들은 간 보호제를 보조적으로 투여한다.
외과도 이렇게 많이 약을 쓰는데 내과는 비수술적인 방법, 즉 대부분 약물로 내과적인 질환을 치료한다. 나중에 글로 쓰겠지만, 현재 나는 부산의 한 동물원에서 실습 중인데 야생동물 역시 약물을 사용한다. 다만,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에 비해 감수성이 높기 때문에 정량대로 투여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약리학은 두 교수님이 가르치셨는데, 그중에서도 김 교수님 수업이 항상 3시간씩 진행돼서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배울 것이 정말 많았다. 특히 심장 쪽은 내가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라 흥미롭게 들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되돌아보면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어 나중에 내과 과목을 듣기 전에 한번 복습할 예정이다.
5. 전염병학
전염병학 자체는 인수공통전염병과 비슷하지만 살짝 다르다. 인공보다 더 넓은 범위의 느낌? 수업도 본2 2학기부터 본3 1학기까지 1년 동안 배우는 과목이기도 하고 이 과목 역시 인공과 비슷하게 유급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과목이다. (인공만큼 힘들게 F를 주시지는 않는다. 다행히 유급을 면할 기회를 주신다.)
우리 학교 전염병 교수님은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일하시다가 오셨는데, 선배들에게 듣기로는 쓰시는 논문 양이 장난 아니라고 하신다. 한 달에 하나를 쓰실 정도라고,, 교수님의 주 연구 분야는 박쥐 쪽이라고 한다. 이 수업 역시 관심 있던 분야라 어느 정도 흥미를 가지고 들었던 것 같다. 평이했던 과목이라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nCoV-19 (코로나바이러스 19) 때문에 우리 과는 개강을 3/2에 강행할 예정이다가 결국 2주 연기하기로 했다. 다만, 이렇게 확산되는 속도를 봐서 2주 연기해도 딱히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연기되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모두들 마스크를 잘 쓰고 손을 잘 씻고 다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