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블로그를 들어왔다. 그동안 글만 안 썼을 뿐이지 답글은 쭉 달아드렸다. 원래 내 블로그의 방문자수는 평소에 100명 정도면 정말 많이 들어온 건데 수능 전후로 방문자수가 많게는 300까지 확 늘어난다. 아무래도 수의대생이 운영하는 블로그가 이 곳 말고는 쉽게 찾을 수 없고, 나도 며칠 전에 알았지만 예전에 19학번 친구들을 초대하기 위해 단톡방 홍보 겸 블로그 홍보했던 글이 수만휘 수의대 모임 게시판에 공지로 올라가서 수의대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더 쉽게 접근하는 것 같다.
티스토리의 가장 큰 단점은 자신이 쓴 비밀 댓글을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때 SNS 연동하는 LivRe 댓글을 할까 생각해봤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바뀌겠지 하는 생각하고 있고, 또 너무나도 많은 학생들, 부모님들이 자신들의 사연을 댓글에 적어주셨기에 차마 지울 수가 없어서 그대로 둔 것이 크다. 한 때 수의대에 들어오기 전에 정말 고민을 많이 했었기에 항상 진심으로 조언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2년 뒤 졸업하고 나서 수의사가 되고 나면 현직으로써 나의 생각과 경험을 계속 글로 쓸 생각이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설렌다. 한창 하루에 2~3개씩 축구 기사를 번역하던 때가 떠올라 흐뭇하기도 하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블로그 살리기라 예전보다는 자주 글을 올리려고 한다.
이제 다사다난했던 2019년, 본과 2학년 생활을 돌아보자.
저번 본1 때도 그랬고 아래 과목들은 모두 가나다 순이다.
1. 공중보건학
우리 학교에서 공중보건학실 교수님은 총 세 분이 계신다. 인수공통전염병학, 환경위생학, 식품위생학 이렇게 세 과목을 교수님 한 분씩 맡으셔서 가르치시는데, 본2 1학기 때 배우는 이 과목은 과목명만 공중보건학으로 되어 있고 실제로는 '환경위생학'을 배운다. 환경위생학은 말 그대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환경'과 관련된 과목인데, 여러 환경들 중 사회적 환경 (정치, 경제, 종교, 교육)은 취급하지 않는 과목이다. 대기오염, 방사선 등 여러 오염들에 대해 배우며 그중에서도 수질오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학교에 있는 돼지 축사에 가서 암모니아 농도 측정기로 측정하기도 했고 수돗물을 여러 기계들로 측정하기도 했다.
과목 자체가 실생활과 많이 연관되어 있고 난이도가 낮은 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들은 것 같다. 시험도 그렇게 어렵진 않았고 대체적으로 우리 학번 친구들이 꿀과목이라고 했던 과목이었다. 뭔가 지구과학 같은 과목 느낌? 실습도 오래 걸리지 않았고 결과도 딱 떨어져서 나오는 거라 재밌게 들었다. 조금 가볍게 느껴지는 과목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나중에 공중보건학을 전공한다면 정말 중요한 내용이다. 특히 물의 경우는 UN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목표 (SDGs) 3번으로 물의 위생을 지정한 만큼 수질오염을 예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 수의독성학
독성학은 말 그대로 독성에 관해 배우는 학문인데, 배우다 보면 정말 많은 물질들이 반려동물들에게 독성을 나타낸다. 흔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보호자들이 사료나 간식 말고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기도 한다.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이 고기를 주시기도 하는데, 돼지고기나 소고기의 경우 적당한 양을 주면 괜찮지만 닭고기의 경우 날카로운 뼈 때문에 웬만하면 살만 주는 것을 추천한다. 고기는 그렇다 쳐도 포도의 경우 포도 안의 어떤 화학물질이 독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개에게는 주면 안 된다. 이렇게 어떤 물질이 독성작용을 체내에서 어떻게 나타내는지 배우는 과목이다. 1학점 짜리인데 교수님이 정년을 얼마 안남기신 교수님이신데도, 그리고 수술하실 정도로 몸이 안 좋으심에도 정말 열정적으로 항상 2시간씩 가르치시는 그 열정이 인상 깊었다.
수의대를 졸업한 후 비임상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독성학을 전공하는 것도 괜찮다. 안정성평가연구소(KIT)라는 정부출연기관에 수의사가 독성평가 쪽으로 많이 진출해 있다. 또한, 화장품이나 기타 어떤 기업이든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독성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분야의 수요는 항상 있다고 할 수 있다.
3. 동물행동학
요즘 수의학에서 가장 떠오르는, 그리고 핫(HOT)한 과목을 하나 뽑는다면 바로 동물행동학을 고를 것 같다. 행동학의 경우 보호자가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과목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교정 후 효과가 눈으로 바로 보이기 때문에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등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많이 끌었다. 강형욱 님은 수의사가 아닌 트레이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식으로 다양한 행동이상을 나타내는 개들을 교정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참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행동학은 거의 무지한 편이라 나중에 '세나개'나 강형욱 님 유튜브를 정주행 하려고 한다. 수의사로는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님이신 설채현 원장님, '냥신'으로 유명한 나응식 원장님, 그리고 UC DAVIS에서 행동학 레지던트이신 김선아 수의사님이 대표적이다. 이분들은 행동학 강의가 있을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행동학 전문가 분들이다.
아쉽게도 우리 학교 행동학 강의는 그렇게 많이 배우지 못한 것 같다. 교수님이 휴강을 몇 번 하셨기도 했지만 뭔가 너무 이론적이라고나 할까? 작년에 나응식 원장님이 학교에 오셔서 강연해주신 적이 있는데 2~3시간만 들었지만 실제 영상과 케이스를 보여주시면서 설명해주시니 이해가 잘 되었다. 여러모로 아쉬운 수업이었다.
4. 수의면역학
면역학은 체내 immune sytem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을 배우는 과목이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업이었다. 이 과목이 특이한 것은 시험을 5번이나 본다는 점이다. 총정리하는 마지막 시험인 5차 고사를 제외하고 1~4차 중 제일 성적이 낮은 시험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나는 다 챙기려다가 이도 저도 아닌 성적을 받아버렸다. 다른 과목에 비해 족보를 어느 정도 타는 과목이고 무엇보다 모두 객관식이기 때문에 찍을 수 있지만, 답이 여러 개인 문제도 많고 내가 찍기를 워낙 못해서 학점이 그렇게 잘 나오지는 않았다. 주변 동기들은 그나마 면역이 쉽다고 했는데,,
동물 중에서는 돼지와 가장 연관이 있다. 학교에 있는 돼지 축사도 면역학 실험실에서 담당한다. 돼지 채혈 알바를 구하기도 하는데, 돼지 똥 냄새가 정말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샤워를 2~3번을 해도 안 빠지는 게 돼지 똥 냄새란다.. 채혈 알바를 한 번쯤 하고 싶었는데 새벽에 일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지원하지 않았다. 학교에 있는 질병진단센터도 면역학 실험실과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 학부생 때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내가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내가 제1저자는 아니더라도 저자에 이름을 올리는 게 내 목표였는데, 아쉽게도 졸업하기 전에 하기는 힘들 것 같다.
5. 수의병리학
생리학이 살아있는 동물의 체내 대사과정에 대해 배운다면, 병리학은 반대로 사체에 대해 조사하는 학문이다. 본2의 또 다른 핵심과목인 병리학은 마치 해부학과 조직학을 합쳐 놓은 듯한 과목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1년 동안 병리학을 배우는데, 임상과도 연관이 있어 꽤 재밌게 들었다. 두 교수님께서 가르치시는데 임 교수님은 썰을 듣는 게 재밌었고 김 교수님은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주셔서 재밌게 들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주로 종양 쪽이었는데, lymphoma나 hemangiosarcoma와 같은 종양에 대해 배웠던 것이 기억난다. 양성 종양과 악성 종양의 차이점도 배우고 외과 실습하면서 종종 듣던 것을 수업에서 들으니 신기했다.
이번에 국가고시 합격하신 한 선배는 본4때 배우는 선택과목 중 하나로 병리학을 추천한다고 하셨다. 교수님이 공무원 시험이나 국가고시 출제위원으로 자주 들어가셔서 국시 공부할 때 도움이 많이 되기도 하고 재밌다고 한다. 예전에 다른 교수님과 진로 상담할 때도 병리학 쪽이 되게 비전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병리학은 나중에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 같기도 한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떻게 되든 본인이 가장 재밌는 것을 하면 되니까..!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SNS 중 하나에 브런치라고 있다. 브런치에서 작가 키워드로 '수의사'를 검색하면 꽤 여러 선배님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글로 잘 풀어내고 계신다. 최근에 진로 관련해서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우연히 미국 대학원에서 병리학을 공부하고 계시는 한 수의사 선배님의 이야기를 봤다. 관심 있으면 이 링크를 클릭하길 바란다.
병리학은 비임상인 것 같으면서도 부검할 때 칼을 쓰는 것을 보면 임상이기도 하다. 임상과 비임상을 둘 다 경험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예전에 CSI와 같은 드라마에 감동받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병리학을 전공한 수의사를 뽑기도 하고 학교나 연구소에서도 병리학 전공자를 뽑기도 하니 갈 길은 많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다섯 과목은 2편에서 서술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