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안 음바페의 편지 : "제 2의 음바페들에게"
본디(Bondy, 파리 북서부 시외에 있는 지역)에 있는 아이들에게,
Ile-de-France 주에 있는 아이들에게,
시외에 있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내가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라는 건 별로 놀랍지 않을거야. 나에게, 축구는 모든거야. 우리 아빠한테 물어봐도 돼. 내가 3살 때, 아빠는 내 생일 선물로 4x4 장난감 트럭을 선물해주셨어. 그 있잖아, 전기 모터 달린 트럭 알지? 안에 앉아서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 말이야. 페달도 있고 다 있었어. 부모님은 내가 집에서 길거리를 지나 축구 장으로 운전하게 해주셨어. 마치 내가 진짜 축구 선수가 되어 훈련장으로 출근하는 것처럼 말이야. 난 이 루틴을 되게 진지하게 생각했어. 다만 한 가지 빠진게 있다면 세면도구가 있던 가방을 까먹었어!
그러나 내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항상 차를 구석에 놔두고 축구를 하러 갔어. 이 멋진 4X4 트럭은 내 친구들이 되게 부러워하던 거였는데, 난 더이상 신경 쓰지도 않았어.
난 그저 공을 원했거든.
나에게 축구공은 모든 것이었어.
그래, 이 이야기는 축구에 대한 이야기야. 근데 사실, 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축구를 사랑할 필요는 없어. 왜냐하면 이건 꿈에 관한 이야기거든. 93번 거리, 본디에서, 시외에서,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건 사실이야. 그러나 우리는 꿈꾸는 사람들이야. 내 생각에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태어났다고 생각해. 아마 꿈꾸는 것이 돈이 별로 안들어서 그렇지 않을까? 아니, 공짜잖아.
우리 이웃들은 정말 다양한 문화가 섞였어. 프랑스, 아프리카, 아시아, 아랍, 세계 모든 곳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항상 음침한 외곽지역(banlieue, 프랑스에서 외곽지역을 일컫는 말 / 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를 클릭!)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너가 여기 출신이 아니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할거야. 사람들은 마치 "폭력배"들이 여기 출신인 것처럼 말하더라. 그런데 폭력배는 세계 어디든지 있어. 다른 나라에도 발버둥치는 사람들 많아. 현실은 내가 어렸을 때 이웃에서 가장 무서웠던 형들 몇명이 우리 할머니가 야채 옮기는걸 도와주곤 했던 것이야. 넌 우리 문화를 뉴스에서 절대 볼 수 없겠지. 항상 나쁜 이야기만 들었을 거야.
Bondy에는 모두가 이해하는 규칙이 있어. 너가 어릴 때 배우지. 너가 길을 걷다가 구석에 15명의 사람들이 서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너가 거기서 딱 한 명만 아는 사람이라면, 선택지가 있어: 인사를 하고 가든지, 아니면 가서 15명 모두 악수를 하든지.
만약 너가 걸어가서 한 사람만 악수한다면, 다른 14명의 사람들은 널 절대 잊지 못할거야. 그들은 너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
재밌지 않아? 난 이런 Bondy의 모습을 살면서 항상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어. 작년 FIFA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 때 나는 시상식 전에 부모님과 함께 걷고 있었는데 저기 방 건너 조세 무리뉴 감독을 봤어. 예전에 조세를 만난 적이 있지만 그 때 그는 내가 처음 보는 4~5명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 그래서 그 순간에 이 Bondy의 상황이 나타났지. 난 이렇게 생각했어, "무리뉴 감독님께만 손을 흔들까? 아니면 직접 갈까?"
음, 나는 가서 인사하고 악수하고 자연스럽게 그의 친구들한테도 인사했어.
"봉쥬르!" 악수하고,
"봉쥬르!" 악수하고,
"봉쥬르!" 악수하고,
"봉쥬르!" 악수했어.
재밌었어, 4명 모두 조금 놀란 표정이었거든, 이렇게 말이야. "오, 우리한테 인사한거야? Hello!"
우리가 다시 걸어갔을 때, 아버지가 웃으면서 말씀하셨어, "이게 다 Bondy에서 온거구만"
그냥 자연스러운 모습이야. 우리가 살던 곳의 규칙이지. Bondy에서 너는 축구를 넘어 가치를 배워. 모두 다 똑같은 곳에 있기 때문에 너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대하는 방법을 배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꿈을 꾸지.
나와 내 친구들, 우리 모두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어. 기대도 안했지. 계획도 안했고. 우리는 꿈꿨어. 이게 차이점이야. 어떤 아이들은 자기 방 벽에 히어로들의 포스터를 걸어놔. 우리는 축구선수들로 벽을 도배했지. 나는 지단과 호날두 포스터가 정말 많았어. (공평하게, 내가 나이가 들면서 네이마르 포스터도 몇 개 붙였어. 네이마르가 보더니 웃던데? 근데 이건 다른 이야기야!)
때때로 사람들은 나에게 우리 이웃들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재능이 나오는지 물어보곤 해. 마치 우리가 마시는 물에 뭐가 있다든지, 우리가 바르셀로나처럼 다른 방식으로 훈련한다든지 등등.. 근데 아냐, 만약 너가 AS Bondy에 왔다면, 이렇게 검소한 가족같은 클럽을 보게 될거야. 아파트 건물 몇 개랑 인조 잔디 몇 개. 근데 나는 축구가 그냥 우리에게 다른 존재라고 생각해. 우리에게 축구는 없으면 안될 존재야. 일상과도 같아. 빵과 물처럼.
난 우리 학교에서 대회를 했던 걸 아직도 기억해. 6학년부터 9학년까지 매 해마다 했던 대회였지. 마치 우리만의 월드컵이었어. 우리는 2유로밖에 안하는 플라스틱 트로피를 위해 뛰고 있었지만 마치 인생이 걸린 것처럼 생각했어. 93번 구역에서 너의 명예는 항상 위태로워. 그리고 웃긴게 규칙이 모든 팀들이 남자와 여자가 같이 섞여야 된다는 거였어. 불행하게도 모든 여자애들이 대회를 뛰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협상을 해야했어. 난 아직도 기억나는게 내 친구한테 그녀가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어서 대회를 우승한다면, 내가 그녀에게 색칠공부할 새 책을 사준다고 말했던게 기억나. 그녀에게 '구걸'하고 있었지.
내가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그만큼 정말 우리에게 축구는 모든 것이었어. "이게 93번 구역이다. (Neuf Trois) 우리는 질 수 없어."
우리는 이 2유로짜리 트로피를 쥘리메컵 (Jules Rimet Trophy : 국제 축구 연맹 주최로 4년마다 개최되는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한 팀에게 주는 트로피. 최초로 월드컵을 3회 우승한 브라질이 영구 보관을 하였으나, 보관 중 도난당하였다.) 처럼 생각하고 뛰었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겠지? 우리 선생님들에게는 꽤 어려웠을거라고 생각해. 그 선생님들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어. 난 어느날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9개의 다른 경고장을 받고 집에 갔던걸 기억하고 있어.
"킬리안이 숙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킬리안이 학교 물품을 잃어버렸습니다."
"킬리안이 수학시간에 축구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난 모른척했어. 난 꽤 좋은 선수였지만 내 전환점은, 아니 내 인생의 전환점은 11살 때 Coupe 93 대회였어. 우리는 준결승에 진출했고 경기가 Gagny에 있는 실제 경기장에서 열렸고, 난 아직도 그게 수요일이었던게 기억나. 그만큼 이 기억이 생생하다는거지. 살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렇게 큰 경기장에서 뛰어본 적이 없었어. 난 무서웠어. 정말 너무 무서워서 뛸 수가 없었어. 공도 거의 못 만졌어.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엄마가 운동장에 걸어와서 내 귀를 잡아당겼던 건 절대 못 잊을거야.
내가 못했기 때문이 아니야. 정말 무서웠기 때문이지.
엄마가 이렇게 말했어, "넌 살면서 이걸 계속 기억할거야. 너가 실패하더라도, 항상 너 자신을 믿어야 해. 60골을 못 넣을 수도 있어. 그건 아무도 신경 안 써. 근데 너가 무섭다고 경기를 뛰기 싫어하는 사실은 너 평생 너를 따라다닐거야."
정말 이렇게 말씀하셨어, 그리고 이 이후에 살면서 절대 축구장에서 무서운 적이 없었던 만큼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지. 우리 엄마, 아빠, 우리 동네, 친구들 없이 킬리안 음바페는 없어.
아마 넌 내가 태어난 곳 출신이 아니라 이걸 이해 못할거야. 그러나, 예를 들어서, 내가 11살일 때 첼시 유소년 팀이랑 같이 훈련하기 위해 며칠동안 런던에 간적이 있었어. 난 너무 기쁘고 충격적이어서 이웃에 있는 친구들에게 내가 어디 갔는지 말하고 싶지도 않았어.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친구들이 날 보고 말하더라고, "킬리안, 저번 주에 어디 갔어?"
내가 말했지, "나 런던에서 첼시랑 훈련했어."
그들이 말했어, "ㅋㅋㅋㅋ 에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말했어. "아니야, 나 맹세해, 드록바도 만났다니까?"
그들이 말했어, "야, 거짓말 하지 마. 드록바는 Bondy에서 태어난 애들은 안 만나. 말도 안된다고!"
난 그 때 핸드폰이 없어서 아빠한테 핸드폰 달라고 해서 우리가 찍은 사진들을 친구들한테 보여줬어. 그제서야 친구들이 날 믿어줬지. 근데 중요한건 전혀 질투하지 않았다는 거야. 전혀. 그냥 놀랄 뿐이었어. 난 그들이 나한테 말했던거를 절대 잊지 못할거야. 난 아직도 상상할 수 있는게 AS Bondy 라커룸에서 경기 준비하려고 옷을 갈아입던 중이었어.
그들이 말했어, "킬리안, 런던에 우리 데려갈 수 있어?"
마치 내가 다른 행성에 와있는 듯 했어.
내가 말했지, "근데 지금은 캠프 끝났어. 미안해."
그들은 폰을 바라보면서 웃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어. "와우. 킬리안, 진짜 너랑 이 순간을 함께 지내고 있구나."
우리에겐 정말 많은걸 의미했어. 이런 곳에 가는건 마치 다른 행성에 가는 것과도 같지.
첼시에서의 경험 이후 나는 부모님에게 Bondy를 떠나 더 큰 클럽으로 가고 싶다고 빌었어. 하지만 넌 너의 부모님을 이해해야 해. 그들은 내가 집에 머물길 원했어. 그저 평범한 아이로 평범한 인생을 살길 바라셨지. 난 그 때 왜 그러셨는지 이해가 안됐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나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었어. 왜냐하면 유소년 팀에 있는 거품에서 절대 배울 수 없었던 힘든 교훈들을 얻었거든.
우리 아빠는 10년동안 내 코치였어. 물론, 놀랍겠지만, 내가 프랑스 국가대표팀 훈련장인 클레어퐁텐에서 훈련을 시작할 때도 말이야. 그 훈련장은 세계 최고의 아카데미 중 하나야. 그러나 그 당시에도 나는 주말마다 집에 돌아와 AS Bondy에 있는 아빠의 세미프로 팀에서 뛰었어. 그리고 그는 내 화려한 아카데미를 전혀 받아들이시지 않았어.
웃기지, 난 집에 돌아올 때 클레어퐁텐 감독님의 말을 머리 속에 담아두고 집에 돌아왔어. 그는 항상 우리가 약한 발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셨지. 클레어퐁텐에서는 우리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 그러나 Bondy에서는 현실이 먼저였어. 세미프로 리그에서 살아남아야 했지. 승리가 가장 중요했어.
어떤 주말에 나는 Bondy에서 뛰고 있었고 윙에서 공을 받았어. 내 오른발에 공이 있었고 혼자였어. 완벽한 상황이지. 그리고 나는 클레어퐁텐 감독님의 말을 들을 수 있었어, "킬리안, 왼발을 사용해."
그래서 나는 왼발로 롱패스를 시도했고, 완벽하게 실패했지. 다른 팀이 공을 뺏어서 역습했고 아빠는 나를 거의 죽이려고 했어.
난 아직도 그가 소리지른게 기억나.
"킬리안! 넌 여기 그 멋.진. 클레어퐁텐의 경험을 시도하려고 온게 아니야! 우린 지금 리그를 뛰고 있어! 클레어퐁텐에 돌아가서 일주일 내내 그 멋진 훈련장에서 훈련해! 하지만 여긴 Bondy야! 우리도 인생이 있다고!!!"
난 지금도 어딜 가든 그 말을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어. 아빠는 내가 혼란스러워했던걸 알았기 때문에 내가 여전히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하려고 하셨지.
그리고 14번째 생일이 오기 직전에 나는 정말 놀랐어. 아빠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일하시는 분의 전화를 받았는데 연휴기간동안 스페인에 와서 훈련 세션에 날 초대한거야. 정말 충격이었는데, 그들이 우리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어, "지단 단장님이 아드님을 보고 싶어합니다." 당시 지단은 단장님으로 일하고 있었어. 물론, 나는 달 위에 떠있는 기분이었지. 난 가야만 했어.
그런데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더라고, 왜냐하면 스카우트들이 우리 경기에 오기 시작했고 난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지. 너가 13살일 때 그런다면 어떻게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를거야. 정말 압박을 많이 받았고 가족들은 나를 보호하고 싶어했어.
근데 그 당시에는 내 14번째 생일이었고 부모님이 클럽과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한 다음에 14번째 생일 선물로 마드리드로 데려가려고 하신거였어.
정말 나에게는 서프라이즈였지! 😉
그리고 믿든지 말든지, 우리는 아무에게도 어디 갔는지 말을 안했어. 내 부랄친구한테도 말 안했는데, 너무 긴장했기 때문이야. 만약 상황이 잘 안풀린다면, 돌아와서 이웃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
난 공항에서 이동해서 훈련장에 도착했던 때를 절대 잊지 못할거야. 지단은 정말 멋진 차를 가지고 주차장에서 우리를 만났어. 우린 인사했고 그는 나를 훈련장에 데려주려고 했지. 조수석을 가리키면서 "가자, 차에 타렴."
그러나 난 그 자리에 얼어버렸고 이렇게 물어봤지, "저.. 신발 벗어야 해요..?"
ㅋㅋㅋㅋㅋ 내가 왜 그런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근데 지단 차였는걸!
그는 그게 정말 웃겼나봐. "물론 아니지, 이리 와, 차에 타."
그는 훈련장에 날 데려다줬어, 그리고 나는 마음 속으로 '난 지단 차에 있다. 난 Bondy에서 온 킬리안이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난 비행기에서 자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했어.
종종 너가 현실에 있더라도, 마치 꿈처럼 느껴지는 때 있잖아, 그 때라고 생각하면 돼.
러시아 월드컵도 똑같은 기분이었어.
너도 알잖아,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월드컵을 경험하지 않아. 마치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지.
모든 기억들 중에 내가 평생 잊지 못할 순간들 중 하나는 첫번째 경기인 호주전에 뛰기 전 터널에서 걸어나오기 전에 서있던 때야.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던 순간이었지. 난 오스만 뎀벨레를 쳐다봤고 우린 서로 미소를 지으면서 절레절레했어.
내가 말했지, "우릴 봐봐. 에브뢰에서 온 소년. 그리고 본디에서 온 소년. 우리 모두 월드컵을 뛰고 있어 ㅋㅋㅋ"
그가 말했어, "내가 맹세하는데, 진짜 믿을 수 없어 ㅋㅋㅋ"
우린 운동장으로 걸어나갔고 우리 뒤에 있는 6500만 명의 국민들을 느꼈어. 내가 라 마르세유(프랑스 국가)를 들었을 때, 정말 울뻔했어.
나에게 흥미로웠던 사실은 월드컵을 우승한 우리 동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외곽지역 출신이라는 거야. 모든 문화가 있고 길거리를 걷다 보면 정말 많은 언어를 들을 수 있는 곳. 14명도, 10명도, 1명이 아니라 15명과 악수를 하는 이웃들.
Bondy의 아이들에게,
Ile-de-France 주의 아이들에게,
외곽지역에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프랑스야. "넌" 프랑스야.
우리는 미친 꿈을 꾸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운 좋게도, 꿈을 꾸는 것은 돈이 들지 않아.
사실, 그건 공짜야.
진심을 담아,
Bondy에서 온 킬리안.
출처 : The Players' Tribune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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