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대생의 수의대 이야기'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수의대생의 수의대 이야기 22번째이자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다.
쭉 읽어온 분들은 알겠지만, 처음에 이 시리즈를 기획한 건 나처럼 수의대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문외한들, 특히 주변에 아는 수의사나 수의대생이 없이 인터넷에서만 정보를 얻어야 하는 수험생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내가 입학할 때만 해도 수의대 생활에 대한 블로그는 거의 없었다. 있어도 몇 년 전 글이라 가급적 최신의 정보를 얻고자 하는 나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결과, 본과 1학년부터 시작해 4년에 걸쳐 2022년에 이 글을 포함하여 총 22편의 글을 썼고 내 블로그에 유입되는 대부분의 검색 키워드가 '수의대생', '수의대 생활' 등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방금 말한 것처럼 내 블로그의 글 역시 몇 년 지난 오래된 블로그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수의대 후배님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모습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어서 따끈따끈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더 되기 때문에 별 걱정이 안 된다. (물론 대부분 일상 블로그지만, 수험생들에게는 이렇게 수의대를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블로그의 다른 글을 떠나 이 시리즈에 달린 댓글은 총 338개였으며 나는 항상 답글을 달기 때문에 절반으로 나누면 119개, 거기에 한 사람이 여러 질문을 물어보거나 가끔씩 친한 동기나 후배랑 장난치는 댓글을 제외하면 100여명이 나의 블로그에 댓글로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2018년에 수의대 생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음에도, 19학번 후배님들부터 '블로그 글 잘 읽고 있었는데 입학해서 뵙게 되어 너무 신기하다'라고 말하는 후배님들이 20, 21, 그리고 편입으로 들어오신 분들까지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걸 들을 때마다 '아, 내가 그래도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며칠 전에 조금 일찍 퇴근해서 평소 후원하고 있는 언론사가 주관한 '후원자의 밤' 행사에 참여해 기자님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기자님께서 아무리 힘들어도 본인의 기사로 인해 세상이 바뀌고 구독자분들이 좋아해주시는 모습을 보면 그만큼 보람찬 게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는 댓글을 보고, 직접 말을 듣는 게 수의대를 다니며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대부분 비밀댓글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다양한 사연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몇 개를 골라서 공개를 할까 했지만, 아무래도 공개되기 싫어 비밀 댓글로 다셨을 테니 공개하지 않겠다. 정말 장문의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나처럼 수의대 생각도 안 했던 사람도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이분들이 억울해하지 않도록 정말 세상에 많은 도움을 주는 수의사가 되자고 다짐한다. 혹시라도 여전히 원하는 결과를 받지 못한 선생님들이 계신다면,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고 옆에 있다면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세상에서 제일 믿는다.
사실 나는 수의대생의 수의대 이야기 시리즈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댓글이 많아 어느 정도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이걸 다 정리해서 책을 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티스토리가 아닌, 출판회사들이 많이 접촉한다는 '브런치'로 옮길까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하지만, 중학생때부터 계속 써온 내 블로그, 그리고 보통 블로그의 경우 오래전에 만들어진 블로그일수록 글을 새로 올리면 검색어 상단에 위치시키는 게 있어 이게 아까워서 블로그를 방치하기에는 조금 꺼려졌다. (실제로 내 블로그를 팔라는 제의도 수차례 있었다. 키워드 광고 역시 제의가 있었고 한창 축구 기사 번역을 했을 때 링크를 통해 축구 티켓을 구입하면 그것의 일정 %를 내가 받는 식이었지만 결국 하나도 벌지는 못했다)
그래서 딱 졸업하면 블로그에 올린 글 + 블로그에 올리지 않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정리해서 '수의대 생활'로 최소한 e-book으로 올리려고 했지만, 마침 딱 위 책이 출간되었다는 글을 인스타 돋보기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저자 목록 중 가장 첫번째에 있는 친구는 내가 여름에 '평창 대동물 실습 심화과정'에 참여했을 때 만나게 된 충남대 수의대 친구다. 나랑 같은 방을 썼던 친구가 서울대 수의대 친구였는데, 그 친구의 여자 친구였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이 커플은 정말 대단하다. 가서도 가장 열심히 실습에 참여했고 질문도 많이 했으며 누구보다 열정 넘치는 모습을 보며 '아, 나도 저렇게 CC 하고 싶었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이렇게 다른 친구들과 책까지 내는 걸 보니 같은 학번인데 존경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지금 네이버나 다음, 구글에 수의대 생활을 검색하면 여러 블로그나 최근에는 유튜브 영상도 많이 올라오지만, 나는 이 책을 가장 추천하고 싶다. 내가 쓴 것들보다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론 난 읽어보지 않았다. 이제 졸업했으니까 😉 하지만 200쪽이 넘는 정도면 정말 본인들이 아는 모든 것들을 다 쏟아 부었으니 저 돈을 지불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관심이 있으면 여기 에서 구매하길 바란다. (나에게 떨어지는 건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근황 + 앞으로 나의 목표
블로그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하겠다. 수의대 생활도 이제 수의대를 졸업했으니 올릴 수는 없고,, 앞으로 내 블로그에서 수의대 생활 이야기는 큰 틀에서만 받아들이고 디테일한 부분들은 여러분들이 직접 정보를 얻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 학교도 커리큘럼이 한 5~6년 안에는 크게 개편될 것 같고 내가 쓴 정보 역시 특히 임상 쪽은 매년 트렌드가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입학할 때와 여러분들이 입학할 때는 상황이 정말 급격하게 바뀐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궁금한 게 있으면 교수님들을 찾아가는 게 베스트다. 물론? 교수님들이 반가워하실지 귀찮아하실지는,, 거기까지는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
그래서 졸업하고 넌 뭐하는데?! 라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일단 나는 국가시험을 보고 몇 년 전부터 국시 끝나면 가장 좋아하는 축구팀인 맨시티 경기를 보러 영국으로 갈 계획이었고 계속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나아졌지만 당시에는 여전히 해외 출국이 많이 불편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포기했고 그 돈으로 컴퓨터도 새로 사고 자취하는데 필요한 것들도 이것저것 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나는 자교 대학원에서 수의산과학 석박통합과정 재학 중이다.
나의 진로 고민 요약
일단 나의 진로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바뀌었다. 예 2 때 외과 실험실 들어가려고 했을 때는 사람의 흉부외과처럼 반려동물에서는 흔하지 않은 심장외과 전문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한창 국제기구에 꽂혔던 본 2 때는 국제기구 관련 대외활동을 하며 이것저것 알아보니 FAO나 OIE에서 수의사가 일할 수 있는 분야는 임상이 아닌, 전염병(AI, ASF 등) 쪽의 비임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마침 우리 학교에 역학을 전공하신 젊은 교수님이 계셔 그쪽으로 대학원을 바로 갈까 고민했으나.. 전염병 수업을 들어보니 나랑은 전혀 맞지 않았고 너무 재미없어서 과연 평생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 바로 포기했다.
그러다 본3때 다시 심장으로 눈을 돌렸고 여름에 심장전문 동물병원에서 잠깐 실습하며 심장을 하려면 내과 쪽으로 가야 하고, 내과에서도 간단한 시술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장님도 내과 석/박사인데 개심술을 하려고 하고 계신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하여 내과 대학원을 진학하려고 했다. 아님 최소한 군문제 해결 후 그 원장님 밑에서 계속 배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본 3 2학기 때 심장을 배워보니 아,, 너무 어려웠다. 흥미를 가지고 계속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 게 심장이었다.
다시 외과로 돌아와 OS(정형외과)는 나랑 안맞는다는걸 외과 실험실 소속으로 실습하면서 진작에 느꼈고, GS(일반외과) 쪽으로 할까 했지만 우리 학교 대학원은 OS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편이라 이것도 조금은 고민되었다. 그러다가 본 3 겨울방학 때 우연히 우리 학교 산과 실험실에서 실습을 하게 되었고 하다 보니 어? 재밌네? 하다가 본 4 여름까지 계속 실험실 소속으로 실험을 진행하며 결국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많고 많은 과 중에 왜 산과?
나중에 산과라는 학문에 대해 서술하겠지만, 일단 임상/비임상을 둘다 할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하나의 매력으로 끌렸다. 소동물 임상의 꽃이 외과라면, 대동물 임상의 꽃은 산과다. 평창 대동물 실습 심화과정에 참여하며 솔직히 내가 느껴도 대동물 실습을 한 번도 못했다고 하더라도 같이 일한 실습생들 중에서 내가 제일 못했고, 그만큼 내가 어느 정도 자신 있었던 외과가 아닌,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못하는 대동물 쪽에서 차근차근 성장해나가는 그런 모습을 만들어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동물 필드쪽에서 일하는 것은 꺼려졌다. 남들보다 못하기도 했고, 외과를 포기했던 이유 중에 하나도 임상에서 워라밸을 챙기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대동물은 워라밸을 더 챙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의대에서 산과는 거의 비임상 쪽에 가깝다. 그게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임상 과목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은 틈틈이 대동물 수의사 선배들에게 배울 계획이다.
학문 자체가 재밌기도 하고, 내가 실험을 디자인해서 내 주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재밌고 교수님이 워낙 잘 챙겨주시기도 하는 등등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자교 대학원 산과실에 진학하게 되었다. 아, 석박통합으로 한 이유는 어차피 난 박사까지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군대도 해결할 겸 (전문 연구요원) 1~2년이지만 시간 줄이고 석사 디펜스를 안 해도 되기 때문에 무슨 과를 가든 통합으로 갈 생각이었다.
여기에 말하지 못한 최종적인 나의 목표, 나의 꿈이 있지만 이거는 내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고 실적이 쌓인 후에 말하도록 하겠다. 뭐가 됐든 어떤 방법으로든 나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수의사가 되고 싶다.
블로그 운영 계획
사람을 살리고 싶은 수의사, 이성주
❔수의사가 어떻게 사람을 살릴 수 있죠?
www.seongjulee.com
앞으로 나는 2개의 사이트를 동시에 운영하려고 한다. 블로그에 수의대 이야기가 주로 올라왔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솔직한 대학원 생활, 그리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한국인) 선배가 없는 랩실에서 나 혼자 이것저것 부딪히며 알게 된 연구자로서의 꿀팁 등 조금 라이트 한 이야기들을 서술하고자 한다.
위 홈페이지는 지금은 한국어로 되어 있지만, 앞으로 연구자로 활동할 나에 대해 소개하는 영문 사이트로 수년간 만날 동일 분야의 해외 연구자들에게 나를 PR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나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어떤 연구 분야에 관심 있는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지 조금 전문성 있는 이야기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그래서 이 블로그의 주 타겟층인 수의대 후배님들, 수의대에 들어오고 싶은 수험생분들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올라오는 대학원 생활을 재밌게 읽어주시면 된다 😊
마치며
본과 4년동안 쓰게 되었던 '수의대생의 수의대 이야기' 시리즈를 이제 못쓴다는 게 참 아쉽다. 메모장에 정리해놨던 글 거리들이 몇 개 있는데 그것들을 쓰지 못하는 '수의사'가 되어버린 나의 상황이 조금은 밉다. 그래도 이제 난 어디 가면 수의사라고 소개한다. 대학원생이라고 먼저 말하면 다들 불쌍하게 쳐다보더라... 🥲
그래도 괜찮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에 좋은 반응들을 보내줬고,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기도 했으며 도움을 필요로 한 사람들에게 내가 도움이 되어 어딘가에서 나로 인해 수의대에 들어와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본과 생활을 하며 아무리 귀찮고 글을 늦게 올려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동기가 되었고 그래서 수의사 면허를 받은 지 4달이 다 되어가지만 어찌어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미래에 수의사가 될 후배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이건 하지 마라! 이걸 해라! 라고 내가 정해줄 수는 없다. 다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졸업을 하기 전에 이런저런 경험들을 많이 해보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보며 앞으로 수의사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을 텐데 '어떤 수의사로 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길 바란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많이 진학하는 반려동물 임상을 추천한다. 그게 가장 무난하다. 경제적인 여유와 보람을 어느 정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여러분들이 이왕 수의사가 되는거, 수의사 1, 수의사 2와 같은 평범한 수의사보다는 본인만의 꿈과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수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의사라는 직업은 정말 멋진 직업이다. 지구에서 인간은 인간 이외 동물을 제외하면 그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동물들을 모두 진료할 수 있는 게 바로 수의사다. 이런 메리트를 잘 살려서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수의사가 되길 바란다. 여러분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진심으로 응원하도록 하겠다. 꼭 잘 졸업해서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수의사대 수의사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
그동안 '수의대생의 수의대 이야기'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의대 대학원생의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