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버풀을 모방하고 있는 것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여전히 예전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올바른 공식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기가 길어질수록 그들은 90년대부터의 리버풀을 닮아가고 있다.
조세 무리뉴의 경질 소식은 스포츠 뉴스의 1면을 한 주 내내 장식했다. 마치 모든 스포츠가 그것을 위해 멈춘 듯 했다.
물론, '스페셜 원'에게는 빅 뉴스이다. 그는 첼시에서 받았던 사랑을 다시 받고자 영국에 돌아왔던 순간부터 언론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조금 시끄러웠던 이별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를 불렀을 때 꿈의 직업을 얻는 것 같았다.
3년 후, 모든 것이 끝났다. 올드 트래포드의 임원진은 할만큼 했다. 그들은 선수들과 언론에 대해 삐지고, 샐쭉하고, 부정적으로 발언하고, 논란을 일으키는 것에 질렸다. 무리뉴는 항상 가방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들은 이런 사실조차 알고 있었다. 무리뉴가 왕조를 구축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고려했어야만 했다. 그는 항상 현재에 충실했다. 많은 우승을 거뒀지만 그의 운영 스타일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논란이 있기도 했다.
제 3자가 보기에는 너무 과도한 결정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정말 이렇게 끝날지 모르고 있었을까? 무리뉴는 이제까지 자신이 거둔 트로피들을 내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1위인 리버풀보다 승점 19점이 뒤지고 현실적으로 TOP4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지금, 그들은 크리스마스 전에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자 플러그를 뽑아버리고 말았다.
현재 그의 자리는 노르웨이 클럽 몰데의 감독이었던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맡고 있다. 그는 차기 감독이 선임되기 전까지 임시 감독으로 시즌이 끝날 때까지 팀을 이끌게 된다. 누군가는 1월 이적시장, 혹은 여름 이적시장에서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할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지난 5~6년은 마치 90년대의 리버풀을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이 기사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려주고자 한다.
신비로움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리버풀은 1990년에 우승한 것이 자신들의 18번의 리그 우승 중 마지막 우승이었다. 그 이후로, 신비로움이 빛을 잃는 것이 확실했다. 아스톤 빌라에 9점 앞선 채 우승한 것은 반대로 단점이 확실히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쿼드의 평균 나이는 높아졌고 많은 클럽의 어린 선수들이 경험이 더 필요했다. 전통적으로, 리버풀의 운영 방법은 선수들이 1군 축구에 걸맞는 수준을 보여줄 때까지 2군에서 뛰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주로 다소 불안한 상태였다가 기회를 얻을 때 그라운드를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러나, 케니 달글리시 감독이 1990-91 시즌에 사임한 이후, 이런 많은 어린 선수들은 아마 너무나도 빨리 책임감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달글리시는 감독으로 3개의 우승컵을 들었다. 이전 15개의 우승컵 중 10개가 자신들의 것이었으며, 이는 리버풀 강점기를 의미했다. 처음에 클럽이 달글리시를 대체할 감독으로 선임한것은 전설의 1군 감독이었던 로니 모란을 임시감독으로 선임하였고, 이후 레전드 공격수였던 그라임 수니스를 정식 감독으로 선임했다.
리버풀은 내부에서 승격시키는 전통이 있었다. 그들의 유명한 Boot Room (위키피디아 참조 - 링크) 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74년까지 빌 샹클리의 성공적인 재임기간동안 그를 지지했다. Boot room은 밥 페이즐리, 조 파간, 로니 모란, 그리고 로이 에반스로 구성됐다. 이 사람들 모두 모란이 임시감독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 모두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리버풀은 무모하게 boot room의 성공을 뽑아냈고 1990년까지는 이게 통했다. 그러나 축구는 달라졌지만 클럽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케팅
축구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1992-93 시즌, 프리미어리그의 출범이었다. 동시에, TV 중계권 계약으로 인해 수입이 많이 늘어났다. 리버풀은 수입을 끌어오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에 의존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중계권을 100% 활용했다. 유나이티드는 겉만 번드르르했던 마케팅 캠페인을 발전시켰고, 전세계에서 스폰서 계약을 끌어모으는 데 집중했다.
이것은 알렉스 퍼거슨이 1990년에 경질당할 위험을 가까스로 피하고 마침내 1993년에 우승하며 25년의 기다림을 마침표를 찍었던 시기와 일치했다. 유나이티드는 프리미어리그 첫 아홉 시즌 중 일곱번을 우승했다. 유나이티드는 그라운드 위에서 갈수록 강해졌다. 그들은 다른 클럽, 특히 리버풀보다는 몇 수 앞서 있었다.
수네스의 재임기간은 3년 내로 끝났다. 클럽도 흔들렸지만 영광스러운 날들이 여전히 눈앞에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점이 두 클럽의 위치가 매우 비슷하다고 느끼는 점이다. 리버풀뿐만 아니라 팬들도 그들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몇 년이 걸렸다. 수네스는 이전에 클럽에서 우승을 경험했던 선수들을 내보냈다. 그가 데려온 많은 선수들은 똑같은 수준이 아니었다. 데려온 유망주들이 발전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상황은 클럽이 부진에 빠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로비 파울러, 스티브 맥마나만, 제이미 레드납, 데이비드 제임스는 모두 수네스에게 기회를 받았다. 그들 모두 수네스에 대한 존경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피터 베어슬리, 스티브 맥마혼, 레이 휴튼, 브루스 그로블라르, 얀 몰비, 로니 휠란의 역량을 무시했다. 수네스는 이안 러시와 존 바네스처럼 그들이 30살에 가깝거나 30살이 넘었기에 팀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딘 선더스, 폴 스튜어트, 나이젤 클러프, 그리고 줄리안 딕스는 매끄러운 세대교체를 하기에는 그렇게 뛰어난 선수들이 아니었다.
Spice Boys
1994년, 리버풀은 boot room 시절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로이 에반스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에반스는 클럽의 감독으로 20년 넘은 경력을 쌓아온 감독이었다. 그의 충성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새로운 세대의 축구 선수들에게는 너무나도 착한 감독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때가 'the Spice Boys' 라고 부르는 시대였다. 이 꼬리표가 붙은 선수를 누구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지만, 파울러, 맥마나만, 맥아티르, 레드납, 제임스, 하크니스는 러덕과 그렇게 거리를 두지 않았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신은 이번 시즌 몇몇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행동이 비슷한 꼬리표를 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무리뉴는 변화를 위해 자신의 성격으로 기강을 잡으려 했으나 포그바, 쇼, 린가드, 래쉬포드와 같은 선수들은 모두 그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리버풀의 성공은 강하고, 훌륭한 선수들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자기 자신의 커리어를 책임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거둔 것이다. 훈련은 딱히 복잡하지 않았다. 항상 리그에서 상위권이었고 선수들은 항상 경기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밥 페이슬리는 1970년대 후반 성공적인 팀을 갈아엎고 불과 한두시즌 후에 완전히 새로운 팀으로 성공가도를 거두었다. 수네스는 자신의 재임기간동안 페이슬리를 청사진으로 삼아야만 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결점이 존재한다. 파울러, 맥마나만, 레드납은 모두 클럽이 제공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훈련과 서포트가 필요했다.
초보 장사꾼
그라운드 밖에서는 치명적이었던 판단의 오류가 존재했다. 클럽은 거의 가족 중심 경영으로 운영되었다. 임원진은 비공개로 일을 진행하였고 팬들은 보통 그들이 올바른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클럽 샵에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너무나도 느렸고 인터넷이 개발되어 전세계적으로 브랜드 상품을 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오로지 영업시간에만 온라인 샵을 여는 실수를 범했다.
브라이언 리드의 환상적인 책 "An Epic Swindle"의 두가지 예시는 얼마나 클럽이 마케팅에서 '초보' 였는지 잘 보여준다.
브라이언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렸던 월드컵 예선, 폴란드와 잉글랜드의 경기가 열렸던 2005년 10월에 있었던 한 일을 말해준다. 폴란드 팬들은 떼로 몰려와 맨체스터에서 비를 피하며 오후를 보내기보다는 "진짜 축구 성지, 안필드"에 가서 보고 싶어했다. 리버풀은 5달 전, 밀란을 상대로 그 유명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거두며 유럽에서 가장 핫한 팀이었다. 특히 제르제 두덱이 골을 넣는 데 활약했기에 폴란드에서 특히 핫했다. 그래서 팬들은 안필드에 도착했지만, 이런 상황을 만나야 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그라운드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타디움 투어밖에 없고 지금 모두 예약이 꽉찼어요."
"하지만 폴란드에서 여기까지 왔는데요..?"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할 수 있는게 없어요"
"그러면 박물관 안이라도 들어가면 안됩니까?"
"스타디움 투어 티켓만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데, 예약이 꽉 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고 그저 경기장 안만 관람하고 싶단 말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언성이 높아지며) 우리가 돈을 낼 테니, 그냥 The Kop 앞에서 사진을 찍게 해달란 말이에요. 별로 오래 안걸릴테니까 사진만 찍고 바로 떠날게요."
"말씀드렸다시피, 스타디움 투어는 오늘 꽉 찼습니다. 클럽샵은 열려 있어요."
"그러면 음료수도 마시고 밥도 먹을 수 있습니까?"
"음... (시계를 바라보며) 저기 길 아래에 있는 카페가 열려있을 것 같네요."
그렇게 그들은 몇개 남지 않은 두덱 머그컵을 사고 경기장 밖을 배회하며 사비로 올드 트래포드까지 돌아갔다.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나 The Kop은 잠깐도 보지 못한 채. 안필드는 그들에게 따뜻하고 특별한 공간이 되지 못했다. 90년대에 "올드 트래포드는 Harrod가 (영국의 유명한 상인) 였지만, 안필드는 그저 골목가게였다."
브라이언은 이후 우리에게 얼마나 그들의 라이벌인 리버풀이 상업적으로 뒤쳐졌는지 말해준다. 극작가이며 리버풀의 시즌권 보유자 Roy Boulter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골목가게도 아니었습니다. Arkels pub 앞에서 수레바퀴가 하나 빠지고 물에 젖은 양파 위로 재가 쌓인 머리가 엉망진창인 핫도그를 파는 상인이었죠. 자기 마음 가는대로 물건을 팔았고 그럴때마다 좌절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마치 샹클리 시절 이전의 리버풀에 대해 서술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신이 본 대로 저것이 80년대의 축구 클럽을 잘 보여준다. 리버풀은 그라운드 위에서 훨씬 뛰어났기에 상업적으로 뒤쳐지더라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름만으로도 선수들, 서포터들, 그리고 우승컵을 끌어모았다. 다른 클럽들이 그들의 왕좌를 뺏으려고 했지만 어떤 도전도 계속되지 못했다. 노팅엄 포레스트, 리즈 유나이티드, 아스톤 빌라, 에버튼, QP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모두 다양한 성공 방식으로 리버풀에게 도전을 했다. 아무도 꾸준하게 우승하지 못했고 리버풀보다 더 좋은 팀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현재 축구계는 자본이 들어왔다. 자본은 많은 클럽들로 하여금 최고의 선수들을 끌어모을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이전에 듣지도 못하고 우승을 별로 못한 팀들도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하게 만든다.
만약, 더 증거가 필요하다면 브라이언은 다음과 같이 마지막 비수를 꽂는다:
"여기 몇주간 있었는데 당신이 제게 뭘 원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허! 우리는 이 돈을 당신에게 모두 지불했는데 당신이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구요?" Fagan이 모두가 들을 정도로 크게 비웃었다.
당시 수네스가 클럽을 맡았을 때 상황은 바뀌었다. 이것이 유나이티드의 조세 무리뉴와 비슷한 점이다. 그의 팀 운영 방식은 첼시, 인테르, 마드리드에서 통했다. 그러나 잠시 후 사람들은 그에게 질려버렸다. 그러나 현재는, 정말 그가 선수들을 자신의 팀으로 만들었는지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퍼거슨의 재임기간동안 그들이 한 시즌에 가장 많이 쓴 이적료는 6300만 파운드 (약 900억원)로, 재임 마지막 해에 쓴 이적료다. 2007-08시즌에는 거의 6200만파운드를 소비했다. 그가 은퇴한 이후 첫시즌에서는 거의 6800만 파운드를 썼다. 루이스 반할의 첫시즌에는 1억 4500만 파운드 (약 2054억원)을 소비했고 1년 뒤에는 1억 파운드(약 1400억원)을 썼다. 포스트 퍼거슨 시대의 첫 4년동안 그들은 4억 6500만 파운드 (약 6600억원)을 썼다. 만약 당신이 퍼거슨 시대의 마지막 10년으로 돌아간다면, 그가 3억 8000만 파운드 (약 5380억원) 밖에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퍼거슨이 12년동안 쓴 것을 유나이티드는 그가 떠난 이후 4년만에 다 썼다. 그렇다고 그만큼 성공을 거뒀을까?
유나이티드는 매 몇시즌마다 퍼디난드, 루니, 반니스텔루이, 베론 등) 빅네임을 영입했다. 그러나 현재는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첼시, 토트넘, 아스날과 경쟁하고 있다. 모두들 돈을 쏟아부을 능력이 있다.
차를 운전하는 것
그래서 어떻게 데이비드 모예스는 한 때 리그 챔피언이었던 팀을 심각하게 망쳐놓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르 망 24시간 경주에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 대회에서 당신은 한 명 이상의 드라이버를 보유할 수 있으며 그들은 차례대로 시간을 소비한다. 다라서 퍼기가 차를 운전하고 있으며 그가 트랙을 지배하고 있다. 그는 기대보다 훨씬 더 길게 운전했지만, 가장 먼저 운전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차에 가한 스트레스가 너무나도 많아 타이어가 닳아졌고 기어가 말을 안듣기 시작했다. 퍼기는 문제를 극복하는 충분히 좋은 드라이버였기에 팀은 여전히 이기고 있다. 겉으로 보면 모두 괜찮은 것처럼 보였지만 당신이 차에 타자 그 때서야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퍼기가 결국 운전대를 모예스에게 넘겼다. 그는 훨씬 더 조심스럽고 경험이 부족한 드라이버였다. 타이어와 기어박스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퍼기는 기본적으로 차를 거칠게 몰았다. 모예스는 변화를 추구했지만 그 결과 경기력이 떨어졌다.
퍼거슨의 마지막 시즌 팀 운영방식은 그가 1년 후 결과에 상관이 없기 때문에 더 무자비했던 것일까? 바로 1년 뒤인데도?
이 이야기는 퍼거슨을 비하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그저 두 개의 훌륭한 클럽들 사이의 유사성과 잘못된 클럽들을 올바르게 되돌려놓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의 시간이 필요했는지 말하기 위해서 꺼낸 이야기다.
감독
헤라르드 훌리에르가 1998년에 나타나기까지, 리버풀은 전혀 개선되지 못했다. 이 때는 마이클 오웬가 스티븐 제라드가 나온 때였다. 훌리에르는 즉시 훈련시설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21세기로 이끌며.
2001년, 한 시즌에서 3개의 트로피, 그리고 1년에 5개의 트로피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는 해였다. 그러나, 라파 베니테즈 감독이 선임되고 나서야 진지한 우승 도전자가 되었다. 그 때까지 데이비드 무어스는 조지 질레트와 톰 힉스와 협력하는 운명의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클럽을 수년간 후퇴시켰다. 리버풀은 브라이언 리드가 카우보이라고 불렀던 두명의 미국인들이 인수할 때까지 성공을 정말 갈망했다.
유나이티드의 변화는 알렉스 퍼거슨의 은퇴뿐만 아니라 상업 디렉터였던 데이비드 길의 사임과도 연관이 있다. 두 명 모두 2013년에 클럽을 떠났다. 길의 자리는 에드워드 우드워드가 넘겨받았다. 그의 선임과 2014년 5월, 말콤 글레이저의 사망이 내가 생각하기에 클럽의 운영 방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우드워드는 부회장이었고 일종의 '돈의 남자' 였으며 클럽의 가장 높은 자리로 승격되었다. 말콤 글레이저는 글레이저 가문의 수장이었고 조심스럽고 재정을 우선시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다. 2014년 이후 유나이티드는 조심스러운 클럽이 되었다.
포그바 (8900만 파운드), 루카쿠 (7500만 파운드), 디 마리아 (6000만 파운드)의 영입은 확실히 그들이 쓸 때는 쓴다는 메세지를 보여줬다. 팔카오와 이브라히모비치의 영입을 보면, 이적료뿐만 아니라 높은 주급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몇몇 사람들은 어떻게 클럽이 주급을 그렇게 쉽게 감당하는지 궁금해했다. 아시아에서의 유니폼 판매만 하더라도 이브라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보낸 시간만큼의 주급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커리어 사상 최초로 리그 우승을 거두지 못했던 때가 바로 유나이티드에 있던 때였다.
퍼거슨이 팀을 이끌고 길이 클럽을 운영했을 때 유나이티드가 그라운드에서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줬는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해서 존재한다. 우드워드가 길을 대체하고, 모예스/반할/무리뉴가 퍼거슨의 뒤를 이으면서 클럽은 자신들의 길을 잃고 말았다. 당신이 빚을 무시한다면, 재정의 건전성은 최고지만, 그라운드의 경기력을 보면 확실히 걱정스럽다. 주말에 한 평론가는 그들이 돈에 충실하기보다는 클럽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로 채워야한다고 말했다.
이번 주의 '감독 회전목마'는 그들이 그렇게 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에 그들은 무리뉴에게 3년 계약을 제시했다. 여름에 1년이 남아있음에도, 그들은 계약을 연장했다. 게리 네빌은 이것이 결단력을 포기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들은 이번시즌이 끝날때까지 재계약 협상을 거절하며 그를 앉혀놓아야 했다. 이는 그들이 돈을 아끼도록 했을 것이지만, 네빌은 무리뉴가 자신의 요구대로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고 이 영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클럽이 자신을 지원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을 것이라는 점 또한 인정했다. 프리시즌 직전, 무리뉴는 더 좋은 센터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클럽은 아무도 영입하지 않았다. 이것이 무리뉴가 여러 포지션에서 선택한 선수들이 불확실해 보이며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지지 못한 이유다.
결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는 1990년 이후의 리버풀과 2013년 이후의 유나이티드에게 일어나는 일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확실히 차이점은 존재한다. 리버풀에게는 많은 문제가 상업적인 문제였으며 그들이 개선해야 할 곳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유나이티드에게는 상업적인 면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나 이를 그라운드의 경기력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그들은 5월, 리그에서 2위였기 때문에 당신은 왜 지금 문제가 터지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프리시즌 때 잘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도 모든 사람이 안다. 단순히 무리뉴때문일까?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들은 무리뉴를 경질하고 솔샤르를 임시 감독으로 선임하여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솔샤르는 팬들을 다시 돌아오게 할만한 감독처럼 보인다. 한 때 전성기의 일원이었던 그가 화려한 공격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는 수비적인 면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의 전략은 뉴캐슬의 케빈 키건과 비슷할까? 유나이티드 팬들은 이번 시즌은 이미 끝났고 다음 시즌 유명한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게 기쁠까? 클럽은 솔샤르에게 1월에 이적료를 제공할까? 만약 그런다면, 그는 새로운 감독이 원하지 않는 선수를 살 것인가?
무리뉴의 올가미에서 벗어난 선수들은 솔샤르의 프리한 운영에 잘 반응할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들이 리그를 우승한지 5년이 지났다. 만약 이번시즌에도 우승하지 못한다면, 6년으로 늘어난다. 만약 새로운 감독이 빨리 필요한 개선을 하지 못한다면, 그 햇수는 10년이 될 수도 있고, 15년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은 현재 상황에 대해 빽빽 불평 불만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단순히 유나이티드의 문제가 무리뉴만의 문제가 아니며 정말 진지하게 그들이 문제가 무엇인지 깊이 살펴보아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조심해라.
출처 : Tales of Two Halves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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