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어쩌다보니 벌써 방학이 얼마 안 남았다. 기말고사를 보고 난 후 2주동안 실습집중보강기간을 보내고, 1주일동안 친구들도 만나고 쉬다가 7월 마지막 2주동안 분당과 서울에서 로컬실습을 잠깐 했다. 개인적으로 되게 원장님들로부터 들은 조언이 많아 만족..! 후기는 따로 쓰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래도 공개적으로 실습생을 받지 않는 곳이다보니 내가 미처 사진같은 것들도 많이 못 찍었고, 또한 블로그에 쓰기 부담스러운 내용들도 있다보니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고 한다. 겨울에 집 근처에서 로컬 실습을 한달정도 할 생각이 있는데 그것까지 해보고 나중에 로컬실습을 무슨 마인드를 가지고 가야 하는지, 실제로 가면 뭘 해야하는지 등을 쓸 예정이다.
오랜만에 쓰는 '수의대생의 수의대 이야기' 시리즈다. 오늘은 내가 작년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정주행했던 한 프로그램을 소개해주고자 한다. 보통 EBS에서 동물 관련 유명한 프로그램을 떠올려보면, 설채현 원장님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나응식 원장님의 '고양이를 부탁해'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두 분은 행동학 쪽에서는 가장 유명하신 분들이기도 하고 프로그램 자체도 되게 인기가 많다. 난 예전에 어느 정도 챙겨봤지만 요즘은 정주행 하기에는 너무나도 에피소드들이 많아서 잘 보지 않는다. 이것들도 나중에 기회되면 리뷰할 예정이다.
오늘 소개하는 EBS '펫하트'는 수의사계의 '명의'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동물병원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수의사의 고충을 잘 보여주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의대를 꿈꾸는 사람들, 혹은 소동물 임상을 목표로 하는 수의대생들에게 한번쯤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왜인지는 천천히 설명해보겠다.
이 글에서는 일반적인 시청자의 입장이 아니라 수의대생의 관점에서 인상깊었던 것들을 쓸 것이다.
먼저, 펫하트는 여러 동물병원들을 다루는데, 그 중에서도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정형/신경외과, 응급의학과, 안과 다. 각 에피소드들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1. 정형/신경외과 - 오아시스 정형외과 신경외과 동물병원
오아시스 동물병원은 정형외과, 신경외과 전문 동물병원으로 두 원장님 모두 우리 학교 출신으로 외과 석/박사 역시 우리 학교에서 하셨다. 학교병원에서 실습을 하다 보면 간간히 원장님들의 이름을 듣곤 한다. 예전부터 정형외과/신경외과로 되게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펫하트에서 보니 신기했다. 이 병원에 대한 설명은 아래 기사를 참고하길 바란다.
[전문진료 동물병원 인터뷰 17] 정형외과 신경외과 특화 '오아시스 동물병원'
https://www.dailyvet.co.kr/interview/71647
펫하트 1화에서는 뒷다리가 90도로 꺾인 차우차우 두치가 나온다. 1화 #001 영상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인데, 로컬 실습을 나가본 적이 있거나 혹은 본4 학생들은 저런 환자에서 라인을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이다. 보통 라인을 잡기 위해서는 cephalic v. 에서 하는데, 토니캣으로 노정을 하고 혈관이 잘 안 보일 경우 털을 깎고 손가락으로 촉진을 하면서 혈관을 찾는다. 대형견이 혈관이 크기 때문에 잘 보이고 카테터도 24GA가 아닌 22GA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위 장면에서는 한 눈에 봐도 오로지 촉진으로만 혈관을 찾아야 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어찌저찌 찾긴 하셨지만, 자신이 소동물 임상을 하고 싶다면 저런 환자가 안 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많이 경험해보는 수밖에 없다. 학교 실습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방학 때 로컬 실습을 나가거나, 아니면 졸업 후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 정형 수술을 하기 전에 X-ray는 기본이고, 특히 뼈와 관련된 질환 (골절 등)일 경우 CT를 권장하는 편이다. (MRI는 연부조직을 보기 위함) CT를 찍기 위해서는 마취를 해야 하는데, 위 장면에서는 두치가 마취 상태에서 배변 실수를 하는 장면이다. 예과 2학년 때부터 학교 병원에서 계속 실습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수의사들은 똥과 오줌에 익숙해져야 한다. 나는 비위가 그렇게 세지는 않았던 편이라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일부러 워킹데드 같은 잔인한 미드나 영화를 봤다. 내용이 워낙 재밌기도 했지만 장기가 다 튀어나오는 등 그런 모습에 익숙해져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잔인한 장면들은 보기 힘들다. 그나마 교통사고로 인해 뼈가 튀어나오는 open fracture 정도..? 해부실습을 할 때도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서 그런지 별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더 많이 보는건 환자들의 똥과 오줌이다. 난 똥에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 실습할 때 치우기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항문낭을 짜주는 건 기본이고 후지마비의 경우 배변/배뇨도 스스로 하지 못해 장갑 낀 손가락에 젤을 발라 항문에 넣어 똥을 꺼내주기도 하고, 방광을 압박하여 오줌을 싸게 하기도 한다. 수술에 들어갈 때도 조절을 못하기 때문에 항문에서 똥이 저절로 나와 항문을 일시적으로 봉합하는 purse string을 한다. 혹시라도 자기는 똥과 오줌이 너무 더러워하기도 하고 비위가 약하다면 임상이 아닌 비임상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수도 있다.
또다른 환자는 척수종양이 재발한 별이. 척수종양 환자는 실습하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케이스다. 간혹 IVDD와 같은 디스크 질환으로 온 환자들은 수술 후 오랜 재활을 거쳐 정상적인 보행을 할 수 있었던 케이스를 볼 수 있었지만, 위처럼 척수종양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게다가 별이는 대후두공 감압술이라는, 영상에도 나오지만 머리뼈와 목뼈 일부를 절제하며 뇌 일부의 압박을 해소함으로써 뇌척수액의 흐름이 개선되도록 하는 어려운 수술을 하게 됐다. 결과는 어떻게 됐는지 영상을 참고해보자. 신경외과는 신경을 잘못 건드리는 순간 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학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2. 응급의학과 - 서울대학교 응급의학과
최근에 관심 가는 학문 중 하나가 바로 응급의학이다. 예전에 유퀴즈 온더 블럭에서 사람이긴 하지만 응급의학과 의사분이 나오셔서 이야기를 한 영상이 본 적이 있는데, 삶과 죽음을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 되게 인상깊었다. 또한, 1학기 초반에 미국에 계신 수의사 선생님들이 해주신 웨비나 시리즈 마지막이 응급의학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강의를 너무 인상깊게 들어서 메일로 길게 보내니 친절하게 카톡 아이디도 가르쳐주셔서 궁금한 것들에 대해 모두 친절하게 답변해주셨다. 지난 달에는 실제로 응급의학을 연구하시는 한 교수님을 찾아봬서 상담 받기도 할만큼 내가 제일 관심가는 과목 중 하나가 바로 응급의학과다.
수의학의 가장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신생 학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수의응급의학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우리나라 대학동물병원들이 응급 환자를 받긴 하지만, 실제로 응급환자만을 전담하는 학교는 서울대가 유일하며 이 역시 생긴 지 5년도 안됐다. 김민수 교수님은 우리 학교에서 외과 교수님을 하시다가 서울대 응급의학과 교수님으로 가셨는데, 내가 실험실에 막 들어갔을 때도 느꼈지만 학교 내외적으로 실력이 매우 뛰어나신 분이라고 들었다. 물론 지금 계시는 교수님들도 대단하신 분들이지만 김민수 교수님 수업을 한번쯤 듣고는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펫하트 2화를 보다 보면 횡격막 hernia로 인해 응급 수술을 하는 경우, 심인성 폐부종으로 인해 호흡곤란이 온 환자 등 다양한 응급 상황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응급의학은 외과/내과 모두를 아우르는 독립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그만큼 공부를 많이 해야겠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과목이라 졸업 후에 이 쪽 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여러분은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3. 안과 - 건국대학교 안과
사람에서는 안과가 따로 있다면, 수의학에서는 안과가 외과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 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를 인정받으신 분들이 몇 분 계신데, 그 중 한 분이 우리 학교 선배이자 외래교수를 맡고 계시고 분당에서 안과 전문 동물병원을 하고 계신 김주리 교수님이시다.
[전문진료 동물병원 인터뷰 25] '안과 특화' 분당 밝은아이 동물병원
https://www.dailyvet.co.kr/interview/106727
항상 외과 실습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안과는 정말 어려운 과목이다. 눈이라는 신체 구조가 다른 장기/기관들에 비해 작은 편이라 만약 수술을 할 경우 매우 미세하고 섬세한 조작이 필요하며 또한, 약물로 관리하는 경우에도 단기간에 낫지 않는 곳이 바로 눈이다. 병원에서 가장 흔히 본 케이스 중 하나가 바로 백내장인데, 예전에 실험실 선배가 백내장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었지만 그 때 들어도 이해를 못했고 여전히 학부생의 수준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안과 검사를 어떻게 하는지는 대강 알고 있지만, 정확히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보정이 만만치 않을 때가 안과 진료를 볼 때다.
펫하트에서는 역시 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이신 건국대 김준영 교수님을 소개하고 있다. 직접 뵌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지만 영상만 봐서는 되게 유쾌해 보이신다. 실습을 하다 보면 안과 환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당뇨 환자의 경우 당뇨성 백내장이 올 확률이 높기도 하고, 노령견/노령묘들은 시각 역시 퇴화되어 녹내장, 백내장이 올 확률이 높기 때문에 다양한 나이대의 안과질환 환자들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안과를 공부하신 선생님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 분들 밑에서 제대로 배운다면 나중에 다른 수의사 선생님들보다는 경쟁력이 뒤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3개의 에피소드들만 간단하게 다뤄봤는데, 수의대생들 혹은 수의대에 들어오고 싶은 학생들이라면 이 펫하트 영상들을 꼭 정주행하길 바란다. 소동물 임상을 꿈꾸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의사로써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이 영상을 보고 소동물 임상에 대한 관심이 더욱더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실습을 하다보면 정말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펫하트에도 보호자분들이 우는 모습이 몇 번 나오기도 하고, 환자들이 다 나아 기뻐하는 보호자들의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이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옆에서 어느 정도 지켜본 바로는, 보호자분들은 정말 반려동물들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느꼈다. 재정적인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보다 하고 싶은데 형편이 되지 않아 마음 아파하는 분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대학원 선생님들도 가장 보람찰 때 중 하나가 환자가 완벽하게 회복되어 돌아가 보호자들이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든 환자들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엄마로부터 태어나 누군가에게 길러져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어떤 이유로 아파해서 병원에 오기까지, 여기까지가 기/승/전/결 중 결말 전까지였으면, 그 결말이 새드엔딩이든 해피엔딩이든 이야기의 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수의사다. 어디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동물들을 살리는 수의사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펫하트를 볼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