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대생의 수의대 이야기' 시리즈는 수의대에 관심 있어하는 고등학생들, 수험생들, 편입 준비생들 등등을 대상으로 수의대 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시리즈입니다.
혹시 이 글이 처음이라면, 1편부터 차근차근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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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근황
분명히 내 계획은 방학 동안 최소 3편의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저번 글 쓴 이후로 정말 정말 너어어어어무 바빴다. 선배들 국가고시도 도와주고 2주 동안 학교에서 실습하고, 밀려있던 약속들 여기저기 만나고 다니다 보니 설날이 되었고, 그 이후에는 또 다른 실습을 2주 동안 하다 보니 지난 글 이후 약 세 달 만에 새로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막 '나 뭐 하고 다닌다~'고 자랑하는 성격이 아니라 '여긴 왜 이리 글이 안 올라오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나도 예전에 관심 있는 블로그를 하루에 한 번씩 들어가 보며 업데이트를 기다리곤 했었는데 몇 달이 지나도 안 올라와서 그 이후로 잘 들어가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 미리 말하지만, 이제 나는 본과 4학년이고 대외활동도 하고 새로 실험실 일도 하지만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어 블로그는 아쉽게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었다. 방학 때 일본어 공부 시작해서 여름에 JLPT N3 따는 걸 목표로 했는데 일본어는 무슨, 하루하루 쌓여 있는 일 처리하기도 너무 힘들다. 😥 이제 2학기 되면 정말 국가고시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겠지만 졸업하기 전까지 최대한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써볼 테니 업데이트가 조금 늦더라도 생각나면 한 번씩 들어와 봤으면 좋겠다.
오늘은 수의대 졸업 후 진로 탐구 두 번째, 임상 편이다. 이전 비임상 편에서 임상 외 다른 길들을 이야기했는데, 거기서 언급한 것들 말고도 로스쿨 가서 변호사 되신 선배들도 있고 그냥 임상 말고 모든 직업을 비임상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모르는 정말 다양한 직업들도 많을 수 있다. 예전에 학교 앞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는데, 기사님이 자기는 전남대 수의대 나왔는데 다른 수의사들에게 병원 맡기고 자기는 여유롭게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은근히 가능한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그냥 '아~ 그러시구나'라고 했던 게 갑자기 기억난다.
여하튼, 임상은 보통 소동물/대동물/가금/말/야생동물(혹은 특수동물)로 나뉜다.
1. 소동물 임상
아마 수의대를 꿈꾸는 학생들이 가장 꿈꿔왔던, 사람들이 '수의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하얀 가운을 입고 귀여운 동물들을 안고 있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분야다. 반려동물이 1,000만 마리를 넘었고 반려동물 양육 인구수는 1,500만 명이 넘었기 때문에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서울경제, 20.09.25) 그만큼 많이 접하는 분야기도 하다. 특히 현재 교수님들이 학부생 시절에는 과탑이 공무원이나 비임상을 가곤 했지만 갈수록 임상, 그중에서도 소동물 임상을 목표로 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졸업생들 중 약 60~70%가 소동물 임상 쪽을 희망한다고 데일리벳에서 봤던 것 같다.
나 역시 소동물 임상을 꿈꿨다. 2년 전 이맘때쯤 쓴 '나의 꿈' 포스팅을 참고해보면 여러 꿈들 중 하나가 바로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는 아니지만 수의사로서 흉부외과 전문의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과 2학년 말에 남들보다 일찍 외과 실험실을 들어간 것이고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여전히 내 목표 중에 하나는 흉부외과 전문 수의사다. 졸업 후 최종적으로 내가 정한 길이 이 길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의사 중에서도 힘들고 그렇다고 의료 시스템상 돈을 많이 벌 수 없는, 사명감과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 하나로 수술에 임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영향을 받은 것이 가장 컸다.
하지만 수의사는 아직 전문의 제도가 제대로 자리잡지 않았다. 레지던트 제도 자체도 공식화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수의학, 특히 소동물 임상은 지금처럼 급격하게 발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한번 소동물 임상 수의사를 꿈꾸는 사람의 평범한 커리어를 상상해보자.
1) 수의대 졸업 (6년) - 인턴 (1년) - 페이닥터 (2~3년 혹은 그 이상) - 개원
2) 수의대 졸업 (6년) - 인턴 (1년) - 외과/내과/영상/임상병리 석사 (2~3년) - 페이닥터 (과장 - n 년) - 개원
3) 수의대 졸업 (6년) - 임상 대학원 석사 (2~3년) - 페이닥터 (n년) - 개원
2024년 기준, 1, 2, 3번의 비율이 4 : 3 : 3 정도 되는 것 같다. (물론 내 주변 기준이다)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글은 학부생의 관점에서 쓴 글이기에 실제 필드 상황과는 다를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코스의 경우 대학원을 가지 않은 경우다. 최근에는 적어도 내가 수의대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소동물 임상을 가고자 하는 많은 선배들이 대학원을 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은 선배들의 경우 대형병원 혹은 아는 병원에서 1년간 인턴 생활을 한 후에 동일 병원이나 타 병원에서 페이닥터로 몇 년 정도 경험을 쌓고 개원을 한다. 그렇지 않은 선배들도 있다. 졸업하자마자 원장님께 2~3년 배우고 바로 개원하는 선배들도 있다. 작년 청수 콘서트에서 대학원을 가지 않고 페이닥터로만 5년? 혹은 그 이상 일하는 여자 수의사 선생님의 강의가 있었는데 대학원을 가지 않아도 만족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아마 원장님과 그리고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 간의 끈끈한 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 코스의 경우 최근 졸업하는 수의대생들의 정석 루트가 아닐까 싶다. 개원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보통 박사과정까지는 하지 않는데, 이유는 시간이 되게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투자한 시간과 돈에 비해 그만한 결과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수를 하지 않는 이상 박사급 인력을 채용하고자 하는 동물병원은 일부 대형병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갈수록 전문화되고 있기도 하고 본인이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박사과정을 밟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아는 선배들 중 박사 과정을 밟고 있거나 졸업한 선배들은 모두 만족하는 듯했다.
임상 석사의 경우 우리 학교는 아직 2년이지만, 충남대를 포함한 다른 학교들은 석사과정을 3년으로 늘리고 있고 서울대는 석박통합과정으로만 받고 있다. 그럼 대학원을 왜 가느냐, 마치 의사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수의대에서는 학위로 대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수의 전문의 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 아시아 수의 안과 전문의, 아시아 수의 내과 전문의 등 몇몇 분과에서는 아시아 수의 전문의가 존재하지만 외과, 영상 등 아시아에서조차 전문의가 없을뿐더러 한국 수의 전문의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는 수의사들이 많다. 데일리벳에서 전문의 제도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항상 댓글창은 불탄다. 로컬 원장보다 못하는 실력을 가진 교수들을 전문의로 인정해야 하느냐, 기존의 원장들은 전문의제도를 다시 따야 하냐,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다 등등 여러 이유로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다. 학부생의 관점에서는 누가 실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아직 시기가 이르지 않나 생각한다. 아직 학부 커리큘럼도 뒤엎어야 할 정도로 바꿀게 태산인데 전문의제도를 만든다? 물론 이 제도에 따라 수의대 커리큘럼의 변화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이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졸업을 앞둔 나 같은 수의대생들은 전문의제도가 생긴다면 학위과정을 밟지 않고 바로 레지던트 과정을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서는 임상 석/박사 과정 자체가 없고 오직 전문의제도가 있기 때문에 그곳의 전문의 제도를 우리나라에 바로 정착시키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외과 실험실에 있으면서 방학마다 한 달씩 본과 3학년 여름까지 학교 동물병원에서 실습했는데, 임상 대학원생들의 생활에 워라밸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외과가 유난히 힘든 과긴 하지만, 의사가 인턴/레지던트에서 개고생 하는 거 생각하면 수의대 대학원 역시 진짜 '개 힘들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개인적으로 알던 선배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곤 하는데 모두 초췌한 모습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고생하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그만큼 배우는 것이 있기에 선배들이 고생할걸 알고 있음에도 학위를 밟기 시작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외과/내과/영상/임상병리 중 어떤 과를 선택해야 할까?라고 물어본다면 정말 취향 차이다. 뭐 가끔씩 커뮤니티에서 내과 석사는 쓸모없다, 외과 석사를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 실제로 들어보면 다 비슷해 보인다. 실제로 동물병원 원장님들은 내과 석사 출신 원장님들이 많고, 외과 석사를 밟으신 분들은 과장이나 부원장으로 일하신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로컬에서 접할 수 있는 케이스 대부분이 내과 질환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수술이 많다고 해도 일반적인 진료의 케이스를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대학원을 고민하는 동기들, 그리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통 본인이 흥미 있는 분야로 가는 것 같다. 당연한 것이 한번 정하면 본인이 공부한 과의 지식만 깊게 알게 되기 때문에 평생 그 분야만 할 거면 본인이 좋아하는 쪽으로 하는 게 좋다.
나는 흉부외과를 가고 싶기 때문에 당연히 외과 쪽으로 대학원을 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과도 본 3 때 배워본 결과 되게 재밌었고 특히 심장은 수의학에서는 오히려 외과보다 내과, 그것도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Cardiology 전문의가 심장수술/시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외과/내과 중에 고민하고 있다. 정형외과는 여전히 유망한 분야지만 나랑은 진짜 안 맞을 것 같다는 걸 실습 때 느꼈기 때문에,, 영상은 진료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 장점이고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임상병리는 그만큼 필요로 하는 병원들이 최소 중형병원 이상이기에 많이들 가지 않는 편이라고 들었다.
이렇게 대학원을 졸업하고 로컬에 취직하게 된다면 보통 과장으로 시작한다. 풀타임 석사 한 경력을 원장님들은 인정해주시는 편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연봉 역시 받게 된다고 들었다. 형들에게 얼마 받는지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기에 어느 정도 받는지 직접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꽤 많이 받는 것 같다.
누군가는 왜 두 코스 모두 결과가 개원으로 끝나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평생 페이닥터를 할 수 없을까? 내가 소동물 임상을 주저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전혀 개원과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개원은 말 그대로 비즈니스다. 어느 지역의 입지가 괜찮은지, 주변 동물병원들은 얼마나 되는지, 시장조사도 사전에 해야 하고 개원하고 나서도 본인의 실력뿐만 아니라 보호자들을 상대하는 능력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이 본인의 소득과 연결된다. 특히 의료사고라도 일어난다면 보호자로부터 오는 폭언과 고소, 그리고 그에 따른 사람들의 입소문에 따라 심각하게는 폐업까지 고려할 수 있다. 에이~ 나는 의료사고는 절대 안 하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본 3~4 때 외과 내과 수업을 들어보면 한순간의 실수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임상 수의사는 평생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진료에도 트렌드가 있고 수술, 치료 방법 역시 계속해서 바뀌고 새로운 방법들이 도입되기 때문에 돈을 떠나서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은퇴할 때까지 계속해서 공부해야 한다.
병원에서 흰색 가운을 입고 귀여운 개/고양이를 치료하는 모습만을 보고 수의대에 들어왔다면,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귀여운 모습보다 아픈 모습을 훨씬 많이 볼 것이고 똥/오줌은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삼출물과 토사물을 보게 될 것이고 예민하거나 사나운 친구들을 만나면 물리거나 몸에 상처가 나는 건 일상이다. 처음에는 나도 더럽고 무섭고 그랬지만 너무나도 많이 봐서 익숙해져 버렸다. 뼈가 튀어나온 open fracture 환자도 과거에는 '어떡해 ㅜㅜㅜ 너무 아프겠다 ㅜㅜㅜㅜ' 였다면 지금은 '어떻게 핀을 박아야 저 뼈가 붙을까?'에 더 관심이 많다. 소동물 임상 수의사를 꿈꾼다면 꼭!!! 병원 실습을 졸업하기 전에 한 번은 해보자. 나는 실험실 소속으로 계속 해왔기 때문에 로컬 실습은 한 번으로 충분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러 번 해보면서 다양한 병원들을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한, 동물병원 수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본인이 필드로 나갈 때 지금의 잘 나가는 원장님들처럼 벌 수 있을 거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과도하게 낙관적인 전망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자신이 제일 좋아하고 흥미로운 분야가 소동물 임상이라면, 그 길을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2024.10.23 블로그에 있는 글 중 가장 인기 있는 글을 꼽으라면 이 글을 꼽고 싶다. 그만큼 수의대생들, 수의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임상에 관심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최근에 대부분의 대학원, 특히 석사는 최소 2년 반 이상 다니는 것이 정석으로 바뀌고 있다. 이유인 즉슨, 2년동안 진료도 보면서 졸업을 위한 연구도 하기에는 벅차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2년은 진료를 보고 나머지 한 학기 동안 졸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요즘에는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을 가는 경우도 되게 많다. 갈수록 대학원이 인기가 있어지기 때문에 이러는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인턴 1년 정도 하고 들어오는 것을 추천하는 것이 필드에서 하는 것과 대학병원에서 하는 것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인턴하면서 배운 경험을 대학병원에서 더 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변에서 필드에 있다가 온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다. 그래서 일단 본인이 대학원 진학에 관심 있으면 대학원 진학을 1순위로 하되, 혹여나 떨어지더라도 인생에서 1년은 정말 짧기 때문에 너무 실망하지 말고 플랜B를 미리미리 세워놔서 인턴을 할 병원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다만, 원장님들은 1년만 하고 대학원 가는 것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2~3년 있다가 대학원에 가는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2. 대동물 임상
수의학에서 대동물이라고 하면, 개/고양이를 제외한 산업동물 대부분을 말한다. 여러 번 실습했고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은 소동물 임상과 달리 대동물 임상 쪽은 나 역시 정보가 거의 없다. 갓 졸업한 선배들 2~3명 정도 대동물 쪽으로 가고, 더 윗선 배는 졸업하고 1년 정도 배우고 학교 근처에서 소동물/대동물 병원을 그 지역에서 처음으로 개원했는데 되게 잘된다고 하더라. 예전에 다른 학교 친구들이랑 만났을 때는 생각보다 대동물 가는 친구들이 그 자리에만 2~3명 정도 있었다.
참고로 여기서 대동물이란, 소와 돼지를 말한다. 돼지는 주로 직접 진료하는 것보다 컨설팅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고, 소는 돼지보다는 개체 치료가 그나마 있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대동물은 전체적으로 병을 예방하기 위한 백신, 항생제 접종이 많은 편이다.
대동물 하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동물 수의사 수 자체가 적을뿐더러 하는 일이 매우 고된 만큼 그만한 소득을 버는 게 마땅하지 않나 생각한다. 휴일이 보장되는 소동물 임상과는 달리 (사실 요즘은 이런지도 잘 모르겠다) 주말이나 새벽에도 연락받아서 나가야 하는 현실이 대동물 수의사로의 진입장벽을 매우 높게 한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학교에 대동물 관련 커리큘럼이 잘 구성되어 있지 않다. 농장이나 목장으로 실습을 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5월에 평창으로 2박 3일간 짧게 실습을 갈 예정이지만) 접할 기회 자체가 없었다. 무엇보다 자가진료가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고 수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물들도 약물 도매상이 먼저 공급하고 나중에 농장에서 고용하거나 위탁한 수의사로부터 처방전만 받는 이 현실이 더 많은 수의사가 오는 것을 막는 것 같다고 느낀다. 대동물 임상에서 수의사가 제대로 자리 잡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아무래도 나 역시 정보가 부족하기에 아래 기사와 유튜브 영상을 덧붙인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온 이한경 원장님은 우리 학교 선배님으로 한 번씩 강의도 하러 오시고 그랬다. 대동물 임상 역시 관심이 있다면 실습을 꼭 해봐야 한다.
(+2024.10.23 - 최근에 데일리벳에서 대동물 지역 거점 동물병원이 만들어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이게 되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동물 수의사는 그동안 워라밸을 포기하고 진료에 임했기 때문이다. 새벽에도 콜 받으면 나가야 하고 이랬는데 이렇게 서로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 자리를 잡는다면 이제 어떻게 보면 대동물 수의사가 소동물 수의사보다 돈도 더 많이 벌고 워라밸도 더 좋아질 수도 있다. 단, 대동물은 자가진료가 여전히 합법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여전할 것이다.)
[대동물 수의사가 사라졌다] 열악한 환경에 업무과중… 수의사 7.95%만 대동물 진료 - 한국농어민신문
대동물 수의사는 극한 직업인 가요? 대동물 수의사 Q&A - YouTube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프로젝트⑥] 어서 와, 대동물은 처음이지?
반려동물과는 달라요... '대동물' 치료를 하는 이한경 수의사님의 고민? | YOU QUIZ ON THE BLOCK EP.90
3. 가금류 임상
가금류 임상 역시 대동물 임상처럼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으면 링크만 달았을 텐데, 학교에서 진행하는 실습을 2주간 경험하면서 생각보다 유망한 분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천천히 설명해보겠다.
우리 학교는 본 3 2학기 때 조류질병학 과목을 배우게 된다. 책 한 권을 한 학기만에 끝내는 어마어마한 과목이지만,, 아마 우리 학교 사람들도 대부분 모르는 점이 전국에서 조류질병학 교수님이 세분이나 계시는, 서울대보다 더 많고 인프라가 제일 좋다고 할 수 있다. 나도 다른 학교 친구에게 들었는데, 조류질병학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꼭 우리 학교에서 실습 한 번씩 한다고 하더라. 전북대학교 (조질) 특성화 캠퍼스일지도..? 또한, 가금류 농장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가 바로 전북이다. 닭고기 하면 생각나는 회사, 하림이 익산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림홀딩스 건물 역시 학교 후문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조류질병학은 FAO나 OIE 같은 국제기구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연구해볼 만하다. 내가 비임상 쪽에서 국제기구 이야기를 꺼냈는지 가물가물한데, 아무리 본인이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국제기구에서는 그만한 실력을 가지는 사람들이 넘치고 넘쳤기 때문에 자신만의 전공분야가 있는 전문가를 주로 채용한다. FAO에는 AI 담당 팀이 있을 정도로 개발도상국에서 조류질병학은 매우 중요한 분야다. 또한, 연간 고기 소비량을 보면 웰빙의 시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비만을 덜 유발하는 백색육이 적색육 (돼지/소고기 등) 보다 더욱더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AI는 이미 몇 번 큰 피해를 유발한 적이 있기 때문에 농림축산검역본부와 각 지자체에서도 이를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 실습한 내용은 나중에 따로 글로 서술하도록 하겠다. 조류질병학이라고 해서 기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 역시 그랬는데, 교수님들 모두 조질은 기초가 아니라 임상이라고 하셨다. 보통 센터에서는 농장에서 죽은 사체들 부검해서 어떤 병으로 인해 죽었는지 파악하고, 만약 그게 전염병이라면 그것이 확산되지 않도록 당국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백신도 만드는 등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필드에는 직접 나가보지 못했지만, 가금류 임상 역시 소나 돼지보다 훨씬 군집수가 많기 때문에 개체 하나하나 치료하기보다는 농장단위로 전염병을 예방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작년에 새로 생긴 수의방역대학원 역시 우리 학교 조질 실험실에서 담당하고 있다. 혹시나 가금류 임상이 궁금하다면, 우리 학교에서 실습을 꼭 한번 해보길 추천한다.
(+2024.10.23 - 주변 지인 중에 가금수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여느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자리만 잡는다면 생각보다 수입이 꽤 많다고 들었다. 실제로 이 친구도 소동물 수의사 인턴보다 더 많이 받는 편이고, 대부분 출장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운전을 많이 한다는 것만 빼면 6시에 칼퇴근하고 되게 좋은 것 같다. 자기 적성에만 맞는다면 충분히 도전해볼만 하다. )
전북대학교 가금류 질병방제연구센터
4. 말 수의사
내 블로그를 자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 때 나의 꿈은 말 수의사였다. 그것도 대한민국 승마대표팀 담당 주치의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국가대표 마크를 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 내 심장을 뛰게 만든다. 아쉽게도, 말을 접해볼 기회가 아예 없었기에 이 꿈은 자연스럽게 접게 되었지만 내가 말 질병학 수업을 듣거나 마사회 실습을 한 번이라도 나가봤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말 임상 역시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작년 이맘때쯤 김선아 선생님이 주최한 웨비나 시리즈에서 마사회에서 일하시는 수의사 선생님께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셨기에 모든 내용을 여기에 쓸 수는 없고 그중 일부만 서술하고자 한다.
먼저, 말 수의사는 크게 두 개로 나뉜다. 마사회 소속 수의사와 개업 수의사. 다만, 마사회 소속 수의사라고 해서 말 임상 수의사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 마사회 내에서 수의직은 진료도 보고 그러지만 경마 운영 (마체검사, 채혈 등), 보건 총괄, 부서 행정, 사업장 방역/검역 등 행정 업무가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문과 친구들에게는 마사회가 꿈의 직장이라고 한다. 연봉도 높기 때문에 그만큼 들어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마사회 수의사 역시 동일한 연봉을 받기 때문에 생각보다 인기가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주변에는 없지만,,
개업 수의사는 경마장 내, 제주도에서 개업하는 수의사, 그리고 내륙에서 개업하는 수의사로 나뉜다. 경마장 내 수의사는 경주마의 파행을 진단하고 투약하는 역할을, 제주도에서는 번식 검사 등을, 내륙에서는 승마장 등에서 일한다. 이런 1차 진료 수의사는 출장 가는 일이 많아 이동용 X-레이 등의 장비를 많이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말은 대학원보다는 많이 접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실습 같은 경우에는 마사회나 개업 말 병원에서 실습할 수 있고 제주대에서는 여름/겨울마다 말 질병학 계절학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된다면 한번 해보길 바란다. 나는 저어어어어엉말 하려고 했지만 외과 실습과 겨울에는 계절학기 듣기 애매한 상황이라 못한 게 한이다.. 미국, 호주, 일본 등이 경마산업이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다면 이 나라들을 추천하셨다.
현재 서울대나 충북대 등에서는 승마 동아리가 따로 있는 것으로 아는데, 졸업하고 새로운 취미로 승마를 배워보려고 한다. 수학여행이나 제주도에 가족들이랑 같이 갔을 때 말을 몇 번 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되게 재밌었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시간이 되면 꼭 배워볼 예정이다.
5. 특수동물/야생동물 수의사
예과 1학년 첫 방학인 여름방학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야생동물보호센터에서 봉사하자는 것이었다. 그 이유인즉슨, 대부분 수의사 하면 개와 고양이를 다루는 수의사를 생각하겠지만, 나는 야생동물 수의사가 가장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종종 외국에서도 일종의 밈(meme)으로 나오기도 하는 것이 '의사는 사람만 다루지만, 수의사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종의 동물을 다룬다'라는 말이다. 난 이 말이 너무 멋있다.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정말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살아있는 생명체 중에서는 동물이 다수를 차지할 텐데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수의사라는 직업이 나에게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쉽게도 내가 싱가포르 야생동물보호센터에서 봉사한 것이나, 지금은 없어진 부산 동물원에서 실습한 것이나, 거제 아쿠아리움에서 실습한 것이나 셋다 야생동물 수의사의 삶을 제대로 체험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사육사의 고충을 잘 알게 되었달까...? 아무래도 학부생이다 보니 야생동물 진료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기는 어려웠다. 에버랜드나 서울대공원 같은 곳은 인맥이 없으면 실습하기가 힘들어 지원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실습한 친구들도 직접적으로 많이 배운 것은 없다고 했다. 가끔씩 반달가슴곰이었나..? 여하튼 지리산 쪽에서 방학 때 실습생을 뽑는 곳이 있었는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 번쯤 지원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야생동물 수의사를 직접 체험해보지 못해도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하는 일이 고될 뿐만 아니라 고생한 만큼 돈을 많이 받지도 못하며 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하질 못하는 힘든 일'이다. 공부를 하고 싶으면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이나 영국 같은 해외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만 들었다.
이렇게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에서 일하는 수의사분들도 계시지만, 특수동물 전문병원을 개업해서 하시는 분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와 고양이를 제외한 앵무새, 토끼, 고슴도치뿐만 아니라 뱀, 도마뱀 같은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분들이 모두 아쉬워하는 것이 우리나라, 특히 지방에는 특수동물 전문 병원이 없기 때문에 멀리 서울 같은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다. 나도 직접 실습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학교 선배 중에 한 분이 서울에서 특수동물 전문병원을 하시는데 수요가 생각보다 매우 많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아직 특수동물 병원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인이 관심 있다면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중에 레오파드 게코 한두 마리 정도 키우고 싶다.
극한직업 - Extreme JOB_야생동물 수의사 1부_#001 - YouTube
(꼭 보세요... 강추...) 지리산 야생동물 의료센터의 수의사들 (KBS_2018.11.25 방송) - YouTube
멸종 위기 동물을 복원하는 ‘야생동물 수의사’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
6. 해외 수의사
내가 임상 수의사를 소개할 때 해외 수의사를 넣은 점은, 아무래도 국제기구를 제외하고 해외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임상 수의사기 때문이다. 나도 한 때 미국 수의사를 꿈꾸곤 했지만, 그 꿈을 접은지는 좀 됐다. 왜냐하면 나는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수능과 토익 같은 전형적인 한국식 영어에 최적화된 토종 한국인일뿐더러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네이티브만큼 영어를 프리 하게 할 수 있는 수의대생들만큼 잘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길진 않지만 몇 달 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행복한 기억들이 많았지만 평생 살 자신은 없다.
해외 수의사의 장점으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나은 동물에 대한 인식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일부 사람들에게 동물은 '아프면 버릴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고 법적으로도 동물복지와 관련해서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미국과 영국, 호주 같은 선진국에서는 동물이 가족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고 그만큼 수의사의 위상 역시 높은 편이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미국에서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다만, 소득세나 워낙 비싼 월세나 집값 등 생활비를 생각하면 한국에서 일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전문의를 따거나 개원을 한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일본은 생각보다 소득 자체는 그렇게 높지는 않은 것 같다.
해외에서 어떻게 수의사를 할 수 있는지는 직접 검색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한 때 내가 미국 수의사에 관심 있었을 때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커리어는 PAVE 합격 후 1년 동안 Final year를 다니면서 미국 수의대생과 같이 공부해보고 NAVLE와 주 면허 시험을 합격하고 전문의를 향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었다. 다만, 가장 큰 리스크는 비자 문제다. 미국에서 수의사를 하려면 H1-B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자신을 보증해줄 수 있는 고용주를 찾기 쉽지 않을뿐더러 있다고 하더라도 추첨에 당첨되어야 해서 비자를 따지 못한다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매우 큰 리스크가 있다. (내가 미국 수의사에 관심 있을 때 정보는 이랬는데, 지금은 비자제도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시절 이민자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많이 제한했기 때문에 그만큼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또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검색해봐야 한다.)
영국과 호주는 미국과 살짝 다른 방식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아본 적은 없어서 서술하지 않도록 하겠다. 작년에는 일본 수의사에도 관심이 있었으나 일본어에 대한 장벽이 높아 최근에는 관심이 식었다. 적어도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수의사의 이야기는 아래 링크들로 대체하겠다. 특히 AVMA 인증을 받은 서울대는 PAVE나 ECFVG 과정을 생략해도 되기 때문에 적어도 향후 몇 년간은 미국 수의사 배출 수가 제일 많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관심이 있다면, 열심히 인터넷에서 조사를 하거나 웨비나를 듣거나, 아니면 교수님들한테 여쭤보도록 하자. 학교 선배 중에 최근에 해외로 나간 수의사가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수의사 The Dogtor - YouTube
수의대 5학년 GAGA,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 일본 수의사
호주 수의대생 - YouTube
7. 마무리
쓰다 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두 글로 나눌걸 그랬나.. 오랜만에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정말 많이 쏟아낸 것 같다. 각종 웨비나뿐만 아니라 교수님들께 들은 이야기, 인터넷에서 내가 열심히 찾았던 정보들, 내가 직접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썼는데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임상의 장점은 비임상에 비해 오직 '수의사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수의학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비임상 역시 임상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후배들이 임상, 그중에서도 소동물 임상보다는 다른 분야로 다양한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내가 소동물 임상할 거니까 너네는 하지 마라 이런 거라고? ㅎㅎ 졸업하고 진로가 정해지면 여기에 쓰도록 하겠다. 이 글이 앞으로 몇 년간 진로 고민이 많은 수의대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